---2006년 11월 28일 (화/밤)
심양(沈陽)은 요녕성의 성도이면서, 중국 동북3성지방의 최대도시이며 관문이다.
1625년 누루하치가 세운 금나라로부터 만주제국과 청 왕조가 북경으로 천도하기
이전까지 청나라의 수도로서 번성하였으며, 북경으로 수도가 이전된 이후에도
중국의 두번쩨 수도로서 동북무역의 중심지로 중요성을 인정받는 곳이다.
우리에게는 만주라는 도시로 더 잘 알려진 도시이기도하다.
심양에 도착하여 숙소에 들기 전에
우리나라에서는 정착하지 못하고 얼마 전 철수한
다국적 유통기업인 까르프 중국매장을 살펴보기로 하였다.
대충 잡아 진해 롯데마트 크기의 면적에 2,3층에서 까르프가 영업을 하고
아래층은 진해 롯데마트 건물처럼 개인들이 분양받아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규모나 면적 진열된 상품들은 데체로 우리눈에 익숙한 상태로 한국애서와 같아 보였고
게시된 가격 또한 1차상품을 제외하고는 별로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까르프 매장이 심양에만 6개가 더 영업을 하고 있다니
심양시의 규모나 상품소비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두운 밤길에 한참을 돌아 한국교포들 밀집지역인 코리아타운에 도착하여
오래만에 불고기 정식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식당 로비에는 현지에서 발행하는 벼룩시장이라는 신문이 눈에띈다.
복잡한 광고들 속에서 해병대 전우회 행사를 알리는 광고가 이체롭다.
어쩌면 여기는 북한이 더 가깝고 수교역사도 길뿐더러 조선족이라며
뿌리내린 교포들이 더 많을 성싶은데...해병대 전우회라면 중국이 개방되고
우리와 수교를 맺은 이후에 심양에 온 순순한 한국교포들이라는 이야기다.
그들이 얼마나 되기에...또 그들 중에서 해병대 출신이 얼마나 되기에
중화인민공화국 심양땅에서 모임을 만들고 행사를 한단 말인가..?
내가 짐작하고 있는 이상으로 많은 교민들이 심양에 터 잡아 사업을 하는 모양이다.
오늘은 오피스텔을 숙소로 정한 모양인데 생각보다 무척 깨끗하고 큰규모의 시설이었다.
---2006년 11월 29일 (수)
< 이른 아침 심양시내의 출근길은 서울의 도심같이 밀려나는 차량들로 복잡했다. >
오늘은 중국 동북삼성의 물류를 담당하는
심양의 전통재래시장인 <오애시장>을 가기로 했다.
우리나라로 수입되는 값싼 생활용품의 7~80%는 중국 남부 상해부근에 있는
<이우시장>이나 주변 공장에서 대형오퍼상들에 의하여 직수입이 되고
나머지 2~30%는 소무역이나 보따리장사들을 통하여 중국북부지방을 오가는
여객선을 이용한 직,간접수입이 이루어진다는 생각이다.
그런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방문하는 중국 동북삼성의 물류중심지인 심양의
대표적 재래시장인 <오애시장>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생각에 서둘러 출발하기로했다.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원래 <오애시장>은
처음 다섯가지물건을 판매하는 시장이라서
<오애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명인데
실제 간판은 다섯오(五)사랑애(愛)로 표기되어 있었다.
조금 사둘러 출발한 탓에 심양의 출근시간과 겹치는 바람에
<오애시장>으로 가는 길목은 서울의 도심만큼이나 차량이 밀리고 복잡하였다.
우리가 도착한 오애시장은 우리의 남대문시장과 비슷해 보였다.
도매시장이라는 특성때문에 시장개장은 세벽4시에 개장하여 도매를 하고
낫 시간에는 일반고객들에게 소매로 판매를 하는 방식이라던지 시장의 규모면에서
서울의 남대문시장과 비슷하였으나 시장현대화사업이 무척 잘되어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넓은 중앙통로를 확보하고 양쪽으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여
윗층으로 접근이 용이하게 설계되었으며 층마다 4각형태로 배열된 수많은 점포들은
남대문시장 만큼이나 복잡하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상가건물과 건물사이를 연결하는 통로도 각 층층이 연결되어 있었으며
각 상가 건물들은 제품별 특성별로 점포들이 입주하여 정열되어있었다.
가끔 공안들인지..? 경비들인지는 몰라도 군인제복같은 복장을 한 사람들이
통로입구를 서성이는 것을 제외한다면 여기가 사회주의국가 시장이라는 생각은
전혀 할 수 없을만큼 무척 활발하고 분주하게 시장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내가 파악할 수 있는 제품들을 찾아서 살펴보고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들을 조사하고 있었다.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는 한국시장에 유통되는 똑 같은 제품을 찾아야한다.
마침 내가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자동유축기를 판매하면서
사은품으로 제공하기 위하여 서울 화곡동 시장에서 구매한 경험이 있는
휴대용 보온물통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 화곡동 도매시장은 중국에서 수입되는 상품들을 유통하기 위하여
새롭게 형성된 수입상품 도매시장으로 저가의 중국상품들이 유통되는 시장이다.
화곡동 시장과 같은 조건을 제시하기 위하여 휴대용보온물통 10개를 흥정 해 보았다.
도매시장의 습성상 아무리 작은 제품이라도 구매 숫자를 1~2개 제시할 때와 ~
열개이상을 제시할 때는 가격구조가 틀려지기 때문이다.
그들이 제시하는 가격에서 가이드가 시키는데로 50% 할인을
요구하였더니 예상외로 흥정이 이루어지고 말았다.
흥정이 이루어진 가격은 화곡동 시장 도매가격의 40% 수준이었다.
화곡동시장에서 1만원에 거래되는 같은제품이라면 여기서는 4,000원인 거이다.
괜시리 한번 흥정 해 본다고 했다가 그 무거운거 들고 온다고 고생께나 하고 말았다.
< 현대식 시장으로 잘 정돈된 <오애시장>입구에서 일행이 기념촬영을 했다. >
일본사람들이 심양을 지배하면서 건축하였다는 심양역(당시는 만주역)사는
우리 서울역의 구,역사같이 독특한 모양으로 심양역을 지키고있었다.
심양 역전에 형성된 전통재래시장인 약제시장의 골목 골목을 돌면서
내가 여나무살때 엄마치마폭을 잡고 딸아다니던 시골장터가 생각이 난다.
절제되지 못한 시장골목은 무질서속에도 나름데로 어떤 질서가 유지되고있었다.
심양역을 가로지르는 대로변에는 심양역이 동북삼성의 중심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수만은 팻말들을 들고 차표를 팔고 고객을 호객하는 호객꾼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정말 이상한 풍경에 현지 가이드에게 사연을 물어보니 심양에서 각 지방으로 가는
교통편이 여의치않고 여객회사도 부족하여 개인들이 자가용 버스로 영업을 하는데
호객꾼들은 손님을 모아주는 대가로 대략 5%의 마진들을 챙기는 영업을 한단다.
정말 진기한 풍경들을 목격하면서 중국이 지금 사회주의 국가라는 사실이 믿어지지를 않는다.
< 자가용 영업을 하는 버스표를 팔려는 호객꾼들로 도로변은 아수라장이 되고 있었다. >
만주들판에 말을 타고 달리던 독립군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동서남북으로 지평선이 연결된 심양, 영구간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두어시간을 넘어 달리다 고속도로변에 자리잡은 <시류시장>을 돌아보기로 했다.
우리가 찾은 <시류시장>은 안산시에 속해 있다고 하는데 허허벌판에 세워진 시장이다.
주위에는 인적을 찾을 수 없어 보이는데 제법 큰 규모의 도매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는 이미 도매 거래가 끝나고 시장 일부는 철시한 상태로 여기저기
셧터문이 닫혀진 시장을 돌면서 시장의 규모만 살피고 돌아왔다.
영구항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누군가 가이드를 향하여 질문을 던진다.
"중국사람들은 모택동과 등소평 중에서 누구를 더 존경하거나 좋아하느냐" 는 질문이다.
조금은 어뚱한 질문인 듯 한 질문이지만 나도 같은 의문이 가는 이유는 ~
과연 지금 중국은 사회주의국가가 맡는지...? 하는 의문 때문이리라.
가이드가 하는말은 ~
모택동이나 등소평이 중국을 위해서 한 일들은 각각 다른 의미가 있음으로
누구를 더 좋아 한다기 보다는 둘 다 중국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마치 아버지와 어머니 중에서 누구를 더 좋아하느냐는 질문과 같다는 이야기다.
모택동은 중국인민들을 해방 시켰고 등소평은 중국 경제를 개방하여 중국의 번영을
불러왔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우리도 우리국민 모두가 존경할 수 있는 국가적 지도자가
두명만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륙의 여행이었다. -끝-
< 심양역 (구,만주역) 앞에서 일행이 단체로 기념촬영을 했다. >
< 구, 만주역 앞에서 포즈를 취해 보았다. >
< 보따리 무역상들로 넘쳐나는 영구항 출국장 앞의 부산한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