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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이야기/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베트콩들이 구축한 요새 구치터널/ 베트남여행 3일차

by 장복산1 2012. 11. 16.

베트콩은 고 딘 디엠 대통령의 남베트남 정부에 반기를 든 여러 집단들이 모여 1950년대 중반에 태동되어 1960년에 베트남민족해방전선 (NLF)의 군사조직이 됩니다. 베트콩의 주목적은 남베트남 정부를 타도하고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을 재통일하는 것이었습니다. 베트콩은 주로 매복·테러 및 파괴 등의 게릴라 작전을 수행했으며, 인구가 많은 주요중심지는 정부군에게 넘겨주고 소규모 부대를 이용해 시골에 거점을 두고 게릴라전을 수행했습니다.

 

미국이 월남전에 개입하면서 우리나라도 연합군의 일원으로 군대를 파병해서 참전하게 됩니다. 월남전의 주적은 정규군보다는 주로 정글을 이용해서 신출귀몰하는 게릴라전을 펴는 베트콩들과의 전쟁이었습니다. 구찌터널(CU CHI Tunnel)은 베트콩들이 게릴라전 수행을 위해서 사이공 인근 정글에 구축한 은거지입니다.

 

그러나 그 규모나 섬세함 때문에 관광지로 개발하여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구치터널은 사이공인근 40여km에 위치한 시골의 정글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이공(호치민시) 강변까지 수 십 km를 사람이 무릎 걸음걸이로 걸을 수 있는 정도의 터널을 연결하였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 일행은 호치민시 인근 떠닝에 있는 신부의 집을 방문하는 일정에 구찌터널을 관광하도록 계획이 되어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상대국에 관심을 가지고 살필 수 있도록 관광이나 신부가 사는 지역을 방문하는 것은 국제결혼에 매우 유익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입니다.

 

 

 

 

나는 베트남이 공산화 된 이후 처음으로 호치민시의 국제공항인 탄산누트공항으로 입국하면서 시퍼런 군복에 별같은 계급장들을 부착한 사람들의 입국심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공항인근에 우리가 묵고있는 덕민호텔(Duc Minh Hotel)도 하노이 출신인 사람이 사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호텔에 도착하자 마자 여권을 호텔에 맞겨야 하는 것이 이 나라의 규정이라는 사실도 나에게는 생소한 경험입니다.

 

길고 지루한 전쟁에서 베트콩의 끈질긴 저항으로 결국은 미국이 페하고 철군하자 공산화된 베트남이 사회주의 국가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도 나는 궁금합니다. 과연 전쟁이란 무엇이며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은 어떻게 승전의 결실을 고르게 분배하고 자신들이 추구하던 이상적인 국가경영을 하는지 하는 문제도 나는 궁금하고 관심이 가는 부분이었습니다.

 

땅이야 모두 국유화 해서 재분배를 하거나 임대하는 형식으로 공산화할 수 있다고 하지만 각자 다른 능력에 따라서 소유권을 주장하던 건물이나 기업체 같은 자산가치들은 어떤 기준이나 과정을 거쳐서 사회주의 국가체제에 맞는 국유화나 공산화 했을지 하는 문제도 궁금합니다. 그토록 치열하고 처참한 전쟁을 치루고 쟁취해서 이룩한 사회주의 국가는 과연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평등하고 행복하게 잘사는 사회인지 하는 의문도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고 여전히 맴돌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토록 숲이 무성한 정글에 수직으로 내려가서 마치 개미굴 같이 이리저이 연결된 터널을 구축했는지 나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더구나 정글에 우거진 나무들 뿌리를 피해가며 섬세한 터널을 구축한 사실도 놀랍습니다. 수직동굴에 빗물이 스며들거나 흙으로 구축한 동굴이 무너지지 않고 아직까지도 온전하게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구치터널을 관광화한 코스에는 실제로 월남전에서 사용하던 무기들로 실제 사격을 경험하는 코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돈 2만5천원 정도를 지불하면 M-16 실탄을 10발 주어 사격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우리 일행은 실탄 10발을 구매해서 각자 3발씩 실탄사격을 체험해 보았습니다. 구찌터널은 예상보다 많은 관광객들이 꾸준하게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구치터널 관광코스는 베트콩들이 실제 정글에서 생활하면서 미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치던 생생한 모습들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습니다.

 

 

나는 전쟁을 체험하지 못한 이 부부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기대합니다. 한국도 6,25라는 동족상쟁의 뼈아픈 전쟁을 경험하고 아직도 통일되지 못한 분단국가입니다. 어차피 부부의 인연이란 서로 다른 환경이나 조건에서 자란 사람들이 만나서 한 가정을 만들어 꾸려 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다른 환경이나 조건을 극복하는 과제도 있지만 서로 알지 못하는 언어의 장벽이나 풍습의 또 다른 장벽도 있습니다.

 

우리 일행은 구찌터널 인근에 있는 이슬람식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신부가 사는 마을인 떠닝을 향해서 출발했습니다. 호치민시에서 불과 65km라는 거리가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산이 보이지 않는 넓고 푸른 평야를 달리는 지루함 때문인지 무척 멀게 느껴집니다. 신부집에 들리기 전에 우리나라 면사무소 같은 관공서에 들렸습니다. 국제결혼을 증명하는 어떤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서 들린 관공서에 계양된 붉은색 깃발이 나에게는 이상한 감흥과 위압감을 느끼게 합니다. 

 

 

여권을 호텔에 맞기라는 규정을 만들어 놓고 지방의 관공서에서는 여권을 소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필요한 서류를 발급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새로 바뀐 국제결혼절차 때문에 문제가 생긴 모양입니다. 앞에는 수리시설을 한 강물이 흐르고 집뒤로는 넓은 농토를 끼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풍경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신부집은 값비싼 트랙터를 2대나 소유하고 있는 베트남 농촌의 여유있어 보이는 부농의 집안이었습니다.

 

전날 결혼식에서 잠시 서로 얼굴을 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용하게 신랑이 처가에서 처가식구들을 처음 상면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신랑과 신부댁 식구들이 서로 의사소통이 어려우니 계면쩍은 웃음만 나누고 있습니다. 후덕해 보이는 신랑의 장인은 오히려 우리가 랜트한 승합차 운전사와 열심히 무슨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가끔은 힐끔 힐끔 우리 일행에게도 눈길을 주지만 도통 무슨 이야기가 진행 중인지 영문을 모르는 우리는 다시 웃음만 보넵니다. 신부댁에서 차린 차와 과일을 먹고 다시 호치민시로 돌아왔습니다.

 

 

 

 

 

 

내가 참전했던 월남전의 실상을 더 가까이에서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었던 하루였습니다. 사실 나는 월남전에 참전했다고 하지만 당시 베트남의 수도였던 사이공(호치민시)에 주둔한 주월한국군사령부에 근무했던 터라 퀴논에 주둔한 맹호부대에서 보름간 진중근무를 체험한 사실 외에는 솔직히 실전경험이 없습니다. 오늘 드이어 베트콩의 실체와 전쟁의 교훈을 체험하는 한 편으로 새로 탄생하는 한 가정의 행복한 모습을 지켜보는 하루였습니다.  

 

 

 

 

 

 

 


나는 블로그 포스팅 말미에 이번 베트남 여행의 좋은 체험을 제공한 드림결혼상담소의 광고를 하나 실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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