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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이야기/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한국군 최초 파병의 흔적 /베트남여행 4일차

by 장복산1 2012. 11. 18.

베트남여행 4일차에는 호치민 시내관광을 하기로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신랑과 신부는 혼인서류를 하려고 현지에 거주하는 설문석 사장님과 같이 다시 신부의 고향으로 출발했습니다. 나는 이틀 전에 준비 없이 길을 나섰다 주월한국군사령부가 있던 자리를 찾지 못하고 고생만하다 돌아 온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미리 인터넷에서 주월사령부 주소를 검색해서 “소요재(逍遙齋)에서 나누는 이야기”  (blog.daum.net/sygs46)라는 불로그를 운영하는 소요거사님의  글에서 주월사 주소가 쩐흥다오(Tran Hung Dao)거리 606번지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택시 기사에게 보여주니 아주 쉽게 찾아 가더군요.

 

주월 한국군사령부가 주둔해 있던 자리에 아직 남아있는 흔적은 본관 건물과 정문의 기둥정도 였습니다. 내가 느끼는 호치민시는 1960년대의 사이공과 2010년대의 호치민시가 공존하는 도시 같았습니다. 도심의 어떤 지역은 도저히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한 반면 도심을 조금만 떨어진 지역이나 골목길은 하나도 변화하지 못하고 마치 1960년대의 시간에 멈추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주월한국군사령부가 있던 자리도 본관건물과 정문 출입구는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오른쪽 옆에는 토요다 자동차 영업소가 들어서 있고 왼쪽으로는 PX가 있던 자리와 민심처 건물에서 후문까지 모두가 헐려 나가고 다른 건물들이 난립해서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조차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본관건문 왼쪽 일층에 내가 근무하던 보도실 자리는 갈색 출입문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군요. 본관 왼쪽에 있던 후문을 나서서 큰길 쪽으로 10여m 가서 우회전하면 내가 숙소로 사용하던 프린스호텔이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프린스호텔 길 건너에는 빅토리아호텔이 있었고 길을 조금 더 가다가 좌회전 해서 2~30m를 가면 한국군들이 묵던 또 다른 호텔인 프라자호텔이 있었습니다. 나는 프린스 호텔에서 잠을 자고 프리자호텔에 있는 식당을 오가며 식사하던 기억을 되살려 보았습니다.

 

그러나 간혹은 아직도 변하지 않은 흔적들이 남아 있지만 내가 찾던 흔적들은 없었습니다. 길건너 빅토리아호텔이 있던 자리에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이름의 병원같은 건물과 그 옆에는 오래된 흔적이 남아있는 아파트같은 건물이 있습니다. 프라자호텔로 들어 가는 길도 찾을 수 없군요. 반세기 가까운 40여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을 이제는 누구도 다시 돌이킬 수 없을 것 입니다. 이렇게 세월은 흘러가고 세상은 바뀌는 것이 우리가 사는 인생의 이치인 모양입니다.  

 

 



하기는 40여년 전에는 사이공시내 어느 교민에게 물어 보아도 주월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3발 달린 "딸딸이"라는 택시를 타고 "따이한" 소리만 해도 주월사 앞에 내려 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식당을 하는 한국관 사장님에게 주월한국군사령부가 있던 자리를 물어 보아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설문석 사장님이 호치민시 교민회에 물어 보아도 주월사 자리가 어디인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추억을 여행하려는 인간의 깊은 내면에 흐르는 휘귀본능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나하고 아무 관계도 없고 내가 그 거리를 찾아야 할 아무 이유도 없는 거리를 나는 헤메고 있습니다. 나는 단지 기억속에 남아있는 추억을 찾아 주월한국군사령부가 주둔해 있던 자리를 찾아 나섰고 그 거리를 떠나지 못하며 아직도 서성이고 있습니다. 이리 기웃거리고 저리 기웃거리면서 골목길의 어느 한 부분에라도 남아 있을지 모를 기억의 흔적들을 찾아서 한 참을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베트남 여행을 마치고 귀국해서도 그 날의 기억을 되 집어 보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낡은 흑백사진첩을 다시 뒤지고 있습니다. 다시 보는 흑백사진에 비치는 나의 모습이 무척 젊어 보입니다. 위에 여러명이 촬영한 사진은 사무실 앞에서 사이공 특파원들과 보도실 직원들이 찍은 사진이군요. 내 기억으로 내 옆에 사복을 입고 있는 분이 한국일보 사이공 특파원 같고 다른 썬그라스 쓴 기자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내 오른쪽에는 중국계 월남인인 장극민이라는 친구 같고 육군복장의 한국군은 보도실장 운전병인 이병장과 보도실 정하사 같은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같이 사진을 찍었던 사람들 모두가 나 같이 늙어 경로우대를 받는 입장이 되었을 것 입니다. 대통령궁과 랙스호텔이 있던 중심거리는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새로 신축한 고층 건물들이 시야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나는 명분없는 전쟁이라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추억의 파편들을 다시 주어 담으며 호치민시 중심거리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김사장과 둘이 께끗하게 새로 차린 베트남식당 체인점같은 깔끔한 식당에서 베트남 음식으로 식사를 하고 들린 커피숍은 서울의 고급 커피숍보다도 더 고급스럽게 보입니다. 우리는 향기 좋은 베트남 커피를 한 잔 마시며 과거의 기억들을 들춰내며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나는 내 인생에 세번 찾아 왔던 기회를 잡았던 사업이야기를 자랑했습니다. 사진관 10년, 유아복체인점 10년, 삼성컴퓨터대리점 10년은 10년주기로 나에게 찾아 왔던 내 인생의 전성기고 기회였다는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군에서 제대해서 사진관을 차리자 주민등록제도가 도입되면서 전국민이 주민등록증사진을 찍어야 했고 흑백사진이 컬러사진으로 변화하는 시기에 사진관을 했다면 나에게는 분명한 기회였습니다. 나는 어린아이들 자라는 과정을 기록하는 사진쵤영을 전문으로 하던 인연으로 다시 10년만에 유아용품 체인점사업을 시작합니다. 유아용품체인점이 처음 생기던 시절에 사업을 시작하여 45평 매장에 넘쳐나는 고객을 감당하지  못해서 셔터문을 내리고 장사를 했다면 역시 나에게는 기회였습니다. 

 

유아용품체인점 고객관리에 필요한 컴퓨터를 도입해서 사용하면서 인연이되어 다시 10년만에 최초로 16비트 컴퓨터가 출시되는 시점에 삼성컴퓨터대리점 사업을 시작합니다. 진해시청직원들과 진해경찰서직원들이 내가 운영하는 컴퓨터매장 교육장에서 하나워드와 도스를 배우던 시절입니다. 지금은 대통령후보인 안철수 해군대위가 내가 운영하던 컴퓨터매장 교육장에서 자신이 개발한  V3백신을 설명하는 진해시민을 위한 무료컴퓨터강의를 했습니다. 분명히 나에게 찾아 온 내 인생 최대의 절정기였다는 기억입니다. 

 

내가 내 자랑을 절제없이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감시장도 자기 이야기를 하더군요. 김사장도 자신이 지금 국제결혼을 주선하고 알선하는 사업을 하면서 절대 거짓말을 한다거나 남을 속이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진심으로 고객을 대하고 사업을 하다보니 손님이 다시 손님을  소개하더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사업은 언제나 그렇지만 당장의 어떤 이익에 급급해서 고객을 속이거나 기만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하는 사업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이제는 고객들의 수준이 점점 높아지면서 인터넷을 통해서 모든 정보들을 유통하고 공유하는 시대입니다. 고객을 너무 쉽게 생각하거나 속이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모릅니다. 더구나 이제는 어떤 분야에서는 고객들의 수준이 오히려 영업을 하는 사람들의 수준을 앞질러 가고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공자앞에서 문자쓴다는 이야기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제는 어떤 사업이건 남을 속이면서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가 버렸습니다. 

 

시대가 바꾸면서 특별한 마케팅 기법이나 상술보다는 좀더 솔직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고객에게 다가 가는 문제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슨 이유로 호치민시에까지 와서 이렇게 자신들의 사업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내가 과거 사이공에 근무하던 시절에 대한 추억들을 되살리며 하던 이야기 속에서 지나간 세월의 파편들이 같이 뭍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김사장이 초심을 잃지 말고, 그가 생각하는 대로 국제결혼 컨설팅사업이 꼭 성공하기를 기대합니다.

 

 

오늘은 구룸이 끼어 근래에 보기드물게 선선한 날씨라고 합니다. 그래도 나에게는 매우 무더운 하루 였습니다. 우리는 시원한 커피숍에서 수다를 떨다 오후에는 대통령궁과 전쟁기념관을 관광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