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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이야기/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인생행로(人生行路)의 뒤안길에서.(2)

by 장복산1 2017. 4. 30.

내가 태어난지 71년이 되고 아내를 만나서 결혼한지 45년이 되는 해에 우리들의 인생행로(人生行路)를 잠시 멈추고 떠난 제주여행 이틀 째 되는 날 아침 일찍 우리는 성산일출봉을 올랐습니다. 대충 20여년 전에 성산일출봉을 오를 때는 얼마되지 않던 거리같았는데 두 번을  쉬고 올라갔습니다. 

 

우리의 인생행로는 한라산 중턱에서 만난 나무뿌리 만큼이나 억세고 모질게 살아 온 세상인지 모릅니다. 아내와 나는 요즘 유행하는 금수저니 은수저니 하는 이야기들과는 전혀 인연없이 살아 온 세대들입니다. 그냥 배가 고파서,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았는지 모릅니다. 삶의목적 자체가 먹고 사는 문제였고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자신과 가족이 같이 기거할 수 있는 집을 한 체 마련하는 것이 유일한 꿈이고 희망이었던 시대를 열심히 살아 왔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성산일출봉을 구비구비 휘어 감으며 오르는 계단만큼이나 우리가 살아 온 인생행로도 구비구비 돌고 돌며 살아 온 느낌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내를 만나서 한 가정을 꾸리고 살면서 매 10년을 주기로 한 번씩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며 살아 온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처음 10년은 진해역전에서 사진관을 운영했습니다. 흑백사진이 칼라사진으로 바뀌던 1970년 시절이었습니다. 진해 Amateur 사진동우회도 만들고 "카필모임"이라는 조직도 만들어 아기들이 자라는 모습을 매월 촬영해서 기록하는 아기사진 전문사진관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면서 열심히 사진관영업을 했습니다.

 

 

 

 

단돈 8만원으로 카메라도 없이 진해역전에 3평 남짓한 공간을 빌려서 창조사라는 DP&E점을 차렸습니다. 지금은 생소한 이름이 되어 버린 DP&E(Developing, Printing & Enlarging)점은 당시에 필름을 현상하고 사진프린트를 대행해주며 유행하던 직업이었습니다. 연탄난로를 피워두고 3일을 기다려도 손님은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궁여지책으로 궁리한 것이 "내가 손님도 없는 점포를 우두커니 지키는 것과 과감하게 밖으로 나가서 돌아 다니며 손님을 찾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일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카메라와 필름이라는 단어를 줄이고 합성해서 만든 "카필모임"이라는 조직을 만들고 내가 매월 회원집을 방문해서 아기들이 자라는 모습을 직접촬영해 기록하는 새로운영역에 도전하는 일이었습니다. 조금은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는 생각으로 나는 내가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면서 카필모임은 히트를 치고 말았습니다. 3년만에 창조사를 리라사진관이라는 상호로 바꾸고 경쟁업체들은 삼사일에 한 판정도 촬영하던 백일, 돌사진을 하루에 20여판까지 촬영했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최소한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내가 포기하지 않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시기도 그 시기였습니다. 사업이 조금 잘 된다고 과감하게 아내가 직장을 포기해 버렸던 사실을 우리내외는 가끔 후회하기도 합니다. 최소한 아내라도 직장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조금만 더 근무를 했다면 노후에 20만원짜리 국민연금이나 받고 있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 올 노후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냥 당장 살기가 바쁘고 오직 젊음이 재산의 전부였던 시절이었습니다.

 

 

 

 

 

 

언제나 성실하게 열심히하면 잘 살 수 있는 세상은 계속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가족이 모두 뿔뿔이 혜어져 열심히 살아도 한 식구가 되지 못하는 세상으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세상은 이렇게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얼마 전 터키를 여행하면서 느꼈던 생각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도대체 국가나 종교라는 조직은 무엇이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태초에 인간은 자신과 가족을 동물들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 움막을 짖고 살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크고 넓은 성곽을 쌓으면서 공동체 생활은 시작되었고 공동체 생활을 위한 조직도 탄생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자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종교적조직이 먼저였는지 모르겠군요. 어떤 이유건 인간은 조직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조직이 자신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조직으로 변질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많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터키 데린구유지하도시 건설은 신의 존재나 종교조직이 아니었다면 인간의 능력으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었습니다. 보스포러스해협의 이스탄불에 있는 돌마바흐체궁전이나 톱카프궁전은 국가라는 조직이 아니면 인간이 할 수있는 능력의 한계 밖에서 벌어진 일이었을지 모릅니다. 이스탄불의 상징이라는 성소피아성당이나 불루모스크같은 건축물은 신을 핑계로 조직한 종교조직의 힘을 상징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왕은 왜 이렇게 큰 궁전에 살아야 했고, 신은 왜 이렇게 웅장한 신전을 요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내외는 가쁜숨을 몰아 쉬면서 올라간 한라산 중턱인 어승생악정상에 주저 앉았습니다. 더 좋은 세상을 꿈꾼다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더 좋은 옷을 입기 위해서? 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 더 편안한 집에서 살기 위해서? 더 좋은 차를 타기 위해서? 아니면 어떤 더를 위한 욕심일까?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어서 배속으로 들어가면 그만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만 먹어도 인간은 100년을 살기가 어렵습니다. 아무리 큰 권력을 가진 인간도 언젠가 죽기 마련입니다. 인간은 그냥 한 없는 욕심때문에 사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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