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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이야기/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인생행로(人生行路)의 뒤안길에서.(3)

by 장복산1 2017.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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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을 타려면 우도로 가는 배를 타고 들어가서 잠수함으로 옮겨 타야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배를 타러가는 길이 좀 복잡합니다. 부두가에서 일하는 아저씨에게 잠수함타러 가는 방법을 물으니 손가락질을 하면서 따라 가라고 합니다. 그리고 "눈치 없으면 고생합니다." 하더군요. 지나 가는 말로 농담삼아 하는 말이지만 인생을 살면서 남의 눈치를 보고, 코치까지 보면서 살았는지 모릅니다. 자신보다는 주위를 의식하며 인생을 살았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체면이라는 시선을 의식해서 자신을 속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어린아기들 사진을 주로 촬영하는 아기사진전문사진관을 운영하면서 아기들과 맺은 인연으로 아기들이 필요한 제품을 판매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1981년 베비라전문점을 개업했던 생각이 납니다. 유통업에 경험도 없이 판매업을 시작할 때는 마치 카메라도 없이 DP점을 차리던 느낌과 같았습니다. 새벽 4시에 가개문을 열고 아무리 기다려도 손님이 올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빗자루를 들고 중앙시장 골목을 쓸기 시작했지요.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갑갑하고 조바심이 나는 자신을 달래는 수단이었는지 모릅니다.

 

 

 

항상 궁하고 어려울 때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며 집중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번뜩하는 아이디어가 떠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나는 손님을 기다리지 못하고 찾아 나서기로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타깃마케팅이라는 개념도 모르고 한 일이었습니다. 그냥 아기들이 필요한 제품을 판매하려면 이가들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베비라가족회의" 라는 조직을 만들아야 한다는 좀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생각해도 참 대단한 도전이었습니다. 베비라전문점을 개업한지 1년만에 다시 상호를 유아백화점으로 바꾸었습니다. 아기들이 필요한 제품을 one Stop Shoping" 하는 전문매장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기들이 있는 집안을 찾아서 타킷마케팅에 집중했던 기억이 납니다. 심지어 코메디언 배일집씨를 초청해서 "베비라 가족회의"를 장복산에서 개최했던 일도 사실은 내가 필요한 고객을 찾아 내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누구나 아기이름과 집주소, 전화번호만 적어내면 경품추첨권을 주어서 경품을 주겠다는 방법으로 고객리스트를 확보해서 고객관리를 시작했습니다. 지금과 같이 통신수단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고 지금과 같이 개인정보에 관한 개념도 없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단군이래 대한민국 최고의 호황기였다고 하는 시절인 80년대에 진해유아백화점도 최고의 호황기였고 나의 인생행로에서도 최고의 절정기였던 것 같습니다. 도대체 안 되는 일이 없었고 무서운 것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인구절벽이라고 아우성을 치지만 그 때만 해도 산아제한이 유효하던 시절에 출산준비물을 판매하고 유아복을 판매하던 유아백화점은 돌덩이를 자져다 놓아도 팔릴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객관리를 하면서 DM발송용 고객봉투를 컴퓨터로 출력하는 방법을 찾다가 컴퓨터를 알게 되었고 다시 1992년 나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컴퓨터 유통업에 도전하게 됩니다.

 

산아제한 변천사 -->'대책없이 낳다가는 거지꼴을 못면한다.' -1960년대 '한집안에 셋만되도 삼천리는 초만원'-1970년대'아들딸 구분말고 둘만 나아 잘 기르자'-1980년대'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부럽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청년시절을 회상하며 가파도 가는 배를 타려고 모슬포까지 왔는데 그만 배시간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가파도가는 배는 오후 2시 전에 가야 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파도에서 떠나는 마지막 배를 타지 못하기 때문에 갈수가 없다고 하는군요. 개인용컴퓨터가 처음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기에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면서 시작한 진해삼성컴퓨터랜드 영업도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컴퓨터를 작동할줄 알아야 컴퓨터를 사겠다는 고객층을 상대로 매장에 무료컴퓨터교실을 운영하면서 영업을 시작했지요.

 

 

어쩌면 나에게는 운명적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카메라도 없이 사진관을 시작하던 70년대는 흑백사진이 칼라사진으로 바뀌면서 사진업이 호황기라는 사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베비라전문점을 시작하던 80년대는 단군이래 최대의 호황기라며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부럽다.'고 하던 유통업의 절정기였습니다. 다시 10년의 세월이 흘러 컴퓨터유통업을 시작하던 90년대는 개인용커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이제 나는 10여년의 공백기를 지나 2013년에 다시 협동조합 일을 시작했습니다.

 

 

 

 

 

 

 

협동조합도 새로운 사회적경제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던 시기에 베비라협동조합을 설립해서 이사장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내인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10년을 협동조합과 맺은 인연으로 마무리를 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혼족? 이라는 새로운 삶의 트랜드에 편승해서 혼자서 서울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나의 인생행로에서 70년의 세월이 이미 지나면서 과연 나를 위해서 산 나의 삶은 어디까지일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아내와 맺은 부부의 인연은 어디까지일까? 자식들과 맺은 가족의 인연은 어디까지일까?

 

 

 

지금 내가 아무리 불행하다고 해도 이 세상에는 나보다 불행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지금 내가 아무리 행복하다고 해도 이 세상에는 나보다 행복한 사람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내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이 세상에는 나보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 끝도 없습니다. 아무리 내가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도 이세상에는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내가 아무리 높은 권좌에 오르고 크나큰 권력을 가질 수 있다고 해도 결코 나는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밖에서는 서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아우성치며 지르는 소리들이 스피커음을 타고 쉼없이 들려옵니다. 이제는 한 가정도 식구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도 참 많습니다.

 

        

이제는 다람쥐가 체바퀴를 돌리듯 쉼 없이 달리던 인행행로를 잠시 멈추고 아내와 손잡고 뒷동산이라도 산책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나의 삶을 찾아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제주여행을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하지 못하는 일도 많습니다. 그래도 이번 여행은 우리 능력에 맞게 잘 짜여진 여행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가항공인 에어부산 얼리버드항공권을 구입해서 제주왕복에 5만3,700원, 숙소는 인터넷 예약으로 하루에 3만원, 랜트카까지 해도 큰 부담이 않 되는 여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