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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리고 이야기/이춘모의 여행후기

네팔 기행 ( 제 3 일 돌리카 )

by 장복산1 2008. 5. 14.

 

2008년 5월 5일 (월요일)


오늘은 아침 6시에 기상을 하여 마이크로버스 한 대를 빌리기로 하였다. 운전사를 포함해 전부 10만원에 빌려서 돌리카로 출발하기로 여행일정을 잡았던 것이다.

 

어제 저녁에 우리를 안내하던 현지 네팔직원이라는 사비나 (Sabina)양에게 내일 아침 6시 까지 출발시간을 꼭 지키라고 다짐을 받던 김 화장의 모습이 신경쓰이는 아침이다. 어제저녁에는 "Dont forget  6 oclock,~!!  I,well give you only one chance," 하면서 아침 6시까지 꼭 약속을 지키라고 다짐을 하던 그가 어찌된 영문인지 마이크로버스 기사가 도착을 하고 사바나양이 도착을 해서 우리일행까지 모두 일어나 신발 끈을 매기까지 그는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나중에 그가하는 변명으로는 여기는 고도가 높은 지역이라 잠을 푹 자지 않으면 안된단다. 왜.~? 그런수칙은 자기에게만 해당이 되고 다른사람들은 자기를 기다려야 하는지는 설명이 안된다. 아침부터 또 한 번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소동이 나면서 그에 대한 신뢰는 점점 무너지고 있었다.


우리가 예상했던 이상으로 카투만두는 지역이 넓고 상주인구도 많은 매우 큰 도시라는 느낌이 들도록 차는 계속 달리고 있었다.

얼마를 달리고 나서야 카투만두를 벗어나서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는 차창으로는 온통 산과 산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산 길을 따라 산 등성이마다 집들이 들어선 모습이 신기하게 보인다.

 

마이크로버스가 무려 두시간을 오를 때까지 시야를 가리는 산등성이 마다는 어김없이 사람들이 사는 집들이 들어서 있고 주변은 마치 산을 오르는 계단을 만들어 놓은 거 같이 층층이 다랭이 밭을 일구어 만든 농토들이 신기롭기만하다.

  

어떻게 저렇게 높은 산등성이에 집들을 지었으며, 그들은 왜 꼭 산 등성이에 살고 있는지 무척 궁금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 일행은 그 궁금증을 풀지 못하고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대관령이나 지리산을 오르면서 온통 산이 밭으로 변하고 산등성이마다는 사람들이 사는 집들을 지었다는 상상을 해 본다면 아마도 우리의 불가사의한 의문들을 짐작하리라.    

 

대체로 사람들은 고을을 따라 터를 잡고 물을 따라 집을 짓고 살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지명에는 원주, 양주, 경주 등 고을주(州)자를 쓰는 지명이 많은 이유리라. 그런데 여기는 터를 잡을만한 고을이 없기도 하겠지만 어떻게 산 등성이에 터를 잡았는지..?

사람이 살림을 사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들은 어떻게 해결을 하는지.? 궁굼증만 쌓이고 있다.

 

         < 모든 산이 밭이고 집이다. 그래도 산사태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   

 

대관령보다 훨씬 높고 험준한 산길을 두시간이 넘게 오르고 넘어서야 오늘 우리가 방문을 약속한 결혼이민자 가족 인 데비띠앙씨의 친정이 있는 아나이코트 (Anaikot) 마을 앞에 도착을 하였다. 마을에 도착을 하고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던 이유는 여기서는 주소만 가지고는 현지인들도 산 등성이마다 즐비한 집을 찾을 수가 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전화로 데비띠앙씨의 동생을 불러내고 그가 머나먼 산길을 달려서 우리를 찾아 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 일행은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길옆에 있는 버스정류소 같은 벤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고 가끔 주변을 지나가는 버스는 사람들로 만원이고 버스 지붕위에 있는 짐칸에까지 수 많은 사람들이 위험하게 올라타고 운행은 하는 모습들은 정말 놀라움 그 자체였다.

 

         < 산속마을 버스정류소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 

    < 버스 지붕에에 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운행되는 모습이 놀라움 그 자체였다. >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서 땀이 범벅으로 젖은 모습으로 달려온 데비띠앙씨의 두 동생을 우리는 다시 버스에 태우고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한참을 가서는 다시 버스를 세웠다. 차로는 더이상 오르지 못하는 산등성이로 난 길을 한참을 돌고돌아 올라 가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을이라기 보다는 서너가구가 집단을 이루고 살아가는 집 앞에는 염소가 집을 지키고 닭들이 모이를 쪼아데며 노니는 한가롭고 적막하게 느껴지는 네팔의 시골 모습이다.

 

무척 나지막한 3층으로 지어진 건물의 아래층은 불도 지피고 밥도 짓는 공간 같았고 주거공간 같은 2층은 맨땅에 흙으로 마감을 하고는 침대와 카페트가 깔려있었다. 창고 겸 살림살이를 보관하는 3층은 겨울에는 추위를 여름에는 더위를 막아주는 완충지대 같았다.

 

우리일행을 반갑게 맞이하여 안내한 2층 방에는 동네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면서 작은 공간이 모두 차 버리고 2층을 오르는 계단까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나중에는 비좁은 마당까지 사람들로 붐비는 것으로 보아서는 아마도 건너먀을 사람들도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 둘 모인 모양이다. 우리 일행은 지난번 함양에서 다문화가정초청 행사 때 녹화 한 데비띠앙씨의 모습과 그의 결혼식 사진을 보여주자 온 방안은 출렁데는 파도처럼 흥분으로 차고 넘치고 있었다.

 

       < 비디오카메라에 온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다. > 

 

"우리는 네팔을 사랑합니다." 박수.~~

"우리는 한국을 사랑합니다." 박수.~ 

분위기를 띄우는 석 회장의 선창에 모두가 따라하며 박수를 치며 웃음꽃이 핀다. 시끄럽고 어지러운 와중에도 데비띠앙씨의 친정 아버지가 슬그머니 네게로 한권의 책을 들고 온다. 박수라는 한국어가 네팔어로는 바다 (Sea)라는 말과 같은 발음인 모양이다.

한국어, 영어, 네팔어를 함께 수록한 책으로 한국어를 공부하는 책같은데 <박 수 = %^&$#* = Sea > 라는 항목을 가리키며 내 얼굴을 쳐다보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우리가 외치는 박수라는 단어가 네팔어로 바다(Sea) 라는 단어와 발음이 같은 모양이다. 깊고깊은 네팔의 산속마을에서 만나는 한국어가 실린 낡은 책 한권이 내 가슴을 뭉쿨하게 만든다.

  

이제는 더 이상 방에서는 어떤 행사를 진행할 공간이 부족하여 마당으로 장소를 옮겨서 서울 낮은 마음교회에서 수집 기탁한 의류들을 전달하는 행사를 진행하였다. 그데로 행사를 마치고 돌아서기에는 너무도 큰 아쉬움만 남기고 떠난다는 생각도 들고 그자리에 모인 네팔사람들의 흥분과 기대를 우리가 저버리는 것 같은 죄스러운 마음때문인지 우리는 자리를 뜨지 못하고 바로 계획을 수정하여 즉석에서 동네 잔치를 열도록 주선하였다.     


염소 한 마리를 기증하면 동네잔치가 충분하리라는 생각으로 우리는 염소한마리를 구입할 수 있는 금액을 데비띠앙씨 친정아버지에게 전달였다. 정말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해하는 온 동네사람들의 순수하고도 순박한 그래서 아름답기까지한 그들의 참 모습을 보면서 우리 일행은 이번 네팔여행을 계획한 우리자신이 자랑스러워 보였다.  

 

우리 일행은 귀국 후 데비띠앙씨에게 전할 소중한 선물을 준비하기 위하여 친정 가족들의 인터뷰를 비디오로 촬영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려서 숙소로 돌아 왔다.

 

          < 데비띠앙씨 친정마당에서 의류를 전달하고 찍은 기념사진이다. > 

               < 데비띠앙씨 가족들이 인터뷰를 하면서 비디오로 촬영을 하였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서 허기진 상태로 우리가 도착한 숙소는 돌리카 힐 정상에 있는 Dhulikhel Lodge resort 라는 리조트로 일본관광객들이 주로 묵는다는 고급스러운 숙소였다.  주변 경관이 뛰어나고 전망도 좋고 분위기 역시 손색없는 편안한 숙소였다. 리조트 식당에서 제공하는 네팔 음식으로 허기진 배를 체우고 나니 피로가 몰려온다.


네팔문화의 또다른 특성은 다른것은 못해도 휴대전화는 꼭~ 마련해야 하는 모양이다. 깊고깊은 산속 데비띠앙씨 친정을 방문했을 때 그집에도 휴대폰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우리를 안내하는 사비나 양도, 마이크로버스 기사도 휴대폰은 필수같이 들고 다닌다.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휴대전화가 필수로 필요한 이유는 너무도 먼 거리들을 오가는 유일한 통신수단이라는 사실이며 그 이상 요긴한 소통수단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토록 깊은 살골에도 통화되고.~ 그토록 어려워도 들고 다니는 네팔의 휴대전화가 우리 휴대전화와 로밍이 안되는 이유도 이해하기 힘든 네팔문화의 특성인모양이다. 휴대전화는 발달했어도 로밍도 안되고 리조트에서 수신자부담 콜랙트콜전화도 안된단다. 집을 나선지 3일이 지나도록 연락이 두절된 상태라 정말 갑갑한 노릇이다. 리조트의 인터넷라인도 고장이라고는 하는데 고장인지 원래부터 안되는지 알길이 없다.

 

다급한 마음에 노트북을 끌어 안고 돌리카힐 정상마을에 있는  PC방을 찾았다. 다행히 여기서는 인터넷 라인이 연결되었다. 오래만에 들어보는 울 마님의 목소리가 그리 상냥하지도 않고 퉁명스럽게 들린다. 아마도 너무나 갑작스럽게 훌러덩 여행을 떠나버린 나에 대한 불만스러움 때문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