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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리고 이야기/이춘모의 여행후기

네팔 기행 ( 제 4 일 챠니켓 )

by 장복산1 2008. 5. 14.
 

2008년 5월 6일 (화요일)


우리가 묵은 돌리카힐 로지 리조트는 주변 풍광도 아름답고 숙소내부나 시설도

열악한 통신시설을 빼고는 일반호텔이나 여타 리조트에 버금가는 좋은 시설이었다.

모처럼 따끈한 물에 샤워도 하고 편안한 잠자리에서 잠을 자고 아침식사도

인터네셔널스타일 뷔페로하고 나니 기분도 마음도 상쾌하게 풀려 버렸다.


숙소 발코니에 앉으니 시야에 가득이 들어오는 산세들이 높기도 하지만

그 높은 산들의 등성이 마다 자리 잡은 집들을 보노라면 다시 한 번 놀라움과 감탄의 연속이다.

어떻게 저 높은 산등성이마다 집들을 짓고 어떻게 생활들을 할까..? 하는 의문들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다. 

오늘도 그 궁금증을 풀지 못하고 마이크로버스에 올라 굽이굽이 한없는 산길을 또 달리기 시작해서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어느 강변에 다리가 있는 우리나라 시골 장터 같은 작은 부락에 도착을 하였다.

무려 4시간 정도를 1차선 산길을 돌아 달리니 배도 고프고 허리도 아프다는 생각이다.

한 결 같이 시야에 들어오는 깊고 깊은 산속의 모습과 그런 산속에는 등성이를 따라 어김없이

바둑판같이 자리 잡은 집들을 보면서 불가사의하다는 생각뿐이다.

그 깊고 높은 산속 길이지만 우리가 가는 길목마다는 이상하리만치 많은 사람들을 자주 만나면서

여기가 정말 네팔의 깊은 산속인지, 우리나라 어느 시골의 장터인지 구분이 안 간다.


수년전 우리시골의 5일장이 생각나는 네팔의 시골장터를 지나 다리를 하나 건너자

정자나무아래는 동네 사람 들이 오순도순 그늘을 따라 앉아서 여유를 즐긴다.

우리 일행도 그 정자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배고픈 문제를 우선 해결하기로 하였다.

장터에는 식당도 있었지만 더운 열기에 묻어 나오는 이상한 남국의 향료냄새가 진동을 하여

장터를 피해 정자나무 그늘에서 우리가 준비한 컵라면으로 한 끼를 때울 작정이다.

정자나무 앞 길 건너에는 아주 작은 구멍가게 두개가 마주보고 있었다.

물건을 진열한 것인지 아닌지도 구분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적한 가게에

도저히 물건이 팔리지도 않을 거 같은 한산한 가게를 젊은 아낙이 지키고 있다.   

      < 물건을 파는지.~ 노는지 구분이 안 가는 하가로운 구멍가게의 모습이다. > 

컵라면 요리에 필요한  끓인물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자

길건너 구멍가게를 여유롭게 지키고 있는 네팔 아낙을 찾아갔다.

언제고 우리가 급할 때는 사용하는 손짓발짓을 써가며 끓는 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해 보았지만 낫선 이국인에 데한 거부감 때문인지 무조건 소사레만 친다. 

Money.~모니.~ 를 외치며 돈을 주겠다는 의사표시를 하자 옆에있던 네팔아저씨의 중제로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끓는물을 마련하여 컵라면으로 허기진 배고품을 해결할 수 있었다.

 

주변에있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들을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으로

우리 일행은 마이크로버스안에서 후룩~후룩~ 거리며 컵라면들을 먹는데

언제 모여들었는지 동네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고개를 기웃거리며 달려 든다.

그들이 안스러워 맘씨고운 이 국장님이 라면 맛을 좀 보여주자 너도 나도 국물까지 달라면서

손을 내 밀며 발돋음을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어릴때 미군들 쓰리쿼터 뒤를 뛰어가며

Give me chocolate~!!  Give me chocolate~!!  하던 그 시절이 생생하게 떠 오른다.

그들이 안스럽기는 마찬가지였던지 이국장님 사모님이 얼른 구명가게에서

사탕한 봉지를 사시더니 그 아이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뭉쿨해진다. 

         < 컵라면으로 허기를 체운 정자나무 그늘에서 바라본 강변의 풍경이다. >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우고 우리 일행은 또다시 높고 험준한 산길을 달리며 산등성이마다

바둑판처럼 정렬된 가옥들을 감상하면서 서너 시간을 달려서야 히말라야 정상이 보인다는

차니켓의 Subhechchha Hotel 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가 카트만두에서 출발하는 버스의 종점이라니 여기서부터는 걸어야 한단다.

여기서 부터는 걸어서 15일이고 한달을 걸어야 자기집에 도착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산세로 보나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아 그럴만 하다는 생각에 동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호텔이라야 우리나라 여관수준만도 못하지만 이 지역에서는 제일 좋다는 호텔을 찾기 위해

매일 한 번씩 내린다는 장대비를 맞으며 이리저리 세 번을 옮기고서야 잡은 호텔이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가장 힘을 발휘하는 사람은 김 회장이라는 생각이다.

한두마디 네팔어를 구사하는 힘을 바탕으로 어디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접근해서

천부적인 미소를 머금으며 한두마디 농을 하는지 말 �바디를 던지고나면 바로 박장대소들을 하면서

네팔사람들이 금새 우호세력으로 변하여 무엇이든 우리 요구를 받아주는 마력을 지닌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김회장 힘으로 네팔 닭을 잡아 닭백숙으로 저녁을 해결하기로 하였다.

호텔식당에서 요리는 이국장님 사모님이 지휘를 하기로 하고 한마리는 닭도리탕을..

한마리는 닭백숙으로 요리하여 바로 옆에 있는 텃밭에서 조달한 체소들을 곁들인 저녁상이 준비 되었다.

오래간만에 밖에는 비도 내리고 푸짐한 저녁상도 준비되었으니 이제 술만있으면 판을펼만하다.

  

어�게 딸려 왔는지 저녁상에 딸아온 소주가 두병에 네팔 위스키를 두병 더 하기로 하였다 

술은 냄새만 맡아도 취한다는 석회장은 냄새로 취하고, 네팔 위스키를 맛만 보겠다며 한잔을 청한

이국장님은 한 잔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맛으로 취하고, 김 회장과 나는 술잔이 서 너 순배를 돌면서

분위기와 기분에 취하고 비디오촬영을 맡은 윤 사장은 술에 취해서 분위기는 고조되고 있었다. 

       < 닭도리탕과 야체로 차려진 저녁상에는 소주병과 네팔 위스키병이 보인다. > 

술이 취하다보니 말이 많아지기 마련이고 말이 많다보니 말은 가지를 치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이번에 네팔 총선에서 마우파트당이 다수의석을 찾이하면서 왕정을 압박하고 있다는

네팔정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마우파트당이 공산당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로 이야기가 번지더니

대화의 초점이 국내 정치문제로 까지 가지를 치면서 국내 진보진영의 민족해방론자들의 계파가 누구니.~

민중해방론자들의 계파가 누구니 하는 문제까지 따지면서 밤 깊은 줄 모르고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자리를 비워달라는 호텔식당 주인의 채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논쟁속으로 매몰된 그들을 뒤로하고

나 혼자 일어날 때는 이미 취기가 온 전신을 타면서 자신을 지탱하지도 못하고 비틀거리며 침실로 향하고 있었다.   

            < 아래 보이는 동네가 버스 종점이다. 여기서 부터는 걸어서 가는 방법밖에는 이동수단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