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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리고 이야기/이춘모의 여행후기

네팔 기행 ( 제 7 일 카트만두- 방콕 )

by 장복산1 2008. 5. 22.

 

    2008년 5월 9일 (금요일)

 

어제 밤 자정이 넘어서야 호텔로 돌아 와 잠에 취하듯 잠을 잔 것 같다.

그래도 어제 밤에는 카투만두 구,시가지 같은 골목에 있는 5성급호텔에서 편안하게

샤워도 하고 에어컨도 돌리면서 잠을 잔 덕분인지 오늘 아침에 서둘러 기상을 해도 몸이 가볍다.

오늘 아침에도 서둘러 기상을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일행은 오늘 8시30분에 출발하는 방콕행 비행기에

탑승이 예약되어 있었던 터라 출국수속하는 시간 등을 감안하면 세벽 6시 이전에 기상을 하여야 했다.

네팔 왕실에서 운영을 한다는 네팔항공은 홍콩, 방콕 등 제한된 지역만 운행을 하기 때문에 어차피 서울에서는

환승을 해야 네팔을 오가는 이유로 90일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방콕에서 3일간을 묵기로 일정을 잡았던 것이다.

다행하게도 석 회장과 가까운 인연을 맺고 있는 이모 경감이 방콕에 Interpol 로 근무를하고 있어서 도움을 요청했다.

서둘러 짐을 챙겨서 3대의 택시에 나누어 타고 공항을 향하는데 불안하기가 그지없다.

티코만한 택시에 짐을 싣고 사람이들이 타니 금새라도 주저 앉을 거 같은데 기사라는 넘은 휘파람을 불어덴다.

세벽부터 마수거리를 잘했다는 생각인지 신이나서 달리는 폼이 가관인데다 어쩌다가 자기 모자가 바람에 날려가자

주저함도 없이 중앙선을 넘어 유턴을 해서는 차를 세우고 모자를 집어 든다.

너무 놀라서 내가 뭐라고 했더니 자기나라에서는 " No problem " 이란다.  

가끔씩 영어를 섞어가며 떠벌리는 기사에게 "안녕하세요"라는 한국말 수업을 시키며 공항에 도착하였다.

아침 햇살을 가르며 이룩한 비행기의 창 넘어로 보이는 히말리야 산맥의 장엄함에 또 한번 가슴이 쿵쿵거린다.

     < 구름을 뚫고 솟아 오른 히말리야 산맥의 장엄함에 내 가슴은 쿵쿵거리고 있었다. > 

우리 일행은 네팔공항을 이룩하여 3시간 반 정도 지나 방콕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진작에 상황판단을 제대로 했다면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숙소같은데서 잠을 자고 수도물도 없이

샤워도 못하고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일을 거의 우리나라 수준의 호텔숙박비를 이야기 하던 김회장 탓이리라.

알고보니 하루에 25,000원정도면 5성급 호텔에 묵을 수 있는 것을 25만원 어쩌고 하는 바람에 좋은 구경했다는 생각이다.

네팔에서는 돈을 만질 필요가 없었던 이유로 환률에 데한 감각이나 기억이 별루없다.

다만 네팔화페는 루피 (Rupee)라는 단위로 통옹되는데 원래 루피는 ‘은’을 나타내는 산스크리트 ‘루피아’에서 유래하며

인도, 네팔, 파키스탄 등에서 통용되며 1루피당 각국의 보조통화 단위는 인도 100파이제(paise), 네팔 100파이스(pice)

파키스탄 100파이제(paise)로 되어 있다고 한다.

네팔 어디서나 네팔사람만 만나면 석회장이 외치고 다니던 "나마스테"라는 네팔식 인사도 오래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방콕공항도 3년전에 울 마님과 왔을 때의 후덥지근하고 먼지나던 공항에서 외각으로 신청사를 지어 이사를 한 모양이다. 

불과 3년전의 모습과는 전혀다른 깨끗하고 산듯하며 규모도 무척 큰 방콕 신공항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아마도 우리나라가 인천공항을 건설 할 당시에 동남아 각국들도 신공항들을 건설 한 모양이다.

방콕이 수완나폼 신 공항으로 이사를 했고, 홍콩도 쳅락콕 신 공항으로, 상해도 푸동 신 공항으로 이사를 한 모습들을 보았다.

내가 입국수속을 먼저 마치고 "짐을 찾으러 22번으로 오세요" 하고 우리 일행에게 소리를 지르자

우리 일행말고 한국말을 알아듣는 또 다른 한국 사람이 "혹시 석회장님 일행이십니까.?" 하며 우리를 반긴다.

우리가 인천을 떠나기 전에는 방콕에서 인터폴로 근무하는 이모 경감이 이번에 경정으로 승진을 하였다는데

우리를 마중하는 그와의 만남은 생각보다 쉽게 이루어졌고 우리는 그의 승진을 축하며 반가운 악수를 나누었다. 

조금은 심하게 비교를 한다면 카트만두와 방콕은 천당과 지옥 정도는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규모나 시설.~ 심지어는 우리를 맞이하는 이소장님과(인터폴 소장님인지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만남도 그랬다. 

공직에 있는분이라 그런지 몰라도 모든게 철두철미하고 완벽 그 자체였다.

       < 방콕에 있는 왕궁의 모습이다 이 사진은 3년전에 울마님과 함께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 2005년 6월에 방콕을 관광 했을 때 왕궁에서 폼을 잡은 울마님 사진이다. >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이소장님이 준비한 승합차에 올라 출발하면서 그는 지도부터 펼쳐 든다.

마치 초등학교 학생들 같이 조심스럽고 자상하게 설명을 하면서 혹시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서

자신의 명함과 함께 방콕 지도와 현지화페를 각 각 200바트씩 나누어 주는 바람에 또 한번 놀랐다.

그런일이야 없겠지만 혹시나 길을 잃어버리면 이 지도나 명함을 보이면서 택시를 타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의 검정색 서류가방속에는 우리를 안내하기 위한 자료들이 어버 �이 들어있는 모양이다.

연실 가방을 열었다 폈다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는 그의 모습이 너무도 진지하다 보니 내가 송구스럽다.

그는 호텔 예약에서부터 우리들의 일정을 시간대별로 쪼개어 일일히 설명을 하면서 우리의 의사를 타진한다.

절대로 안되는 일도 없고, 그렇다고 되는일도 없던 네팔에서의 일정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를 느낀다.

그러나 지금 나의 모든 관심은 방콕에서 골프라운딩을 한번하는데 더 많은 관심이 있을 뿐이다.

지난번 네팔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양주시선관위 이국장님이 골프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즉석에서 방콕에 가면 한 라운딩돌자는 약속을하면서 이소장님에게 전화로 예약을 부탁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에는 내 환갑이라고 아들 딸들이 주선한 가족여행을 태국의 남단인 푸겟으로 일주일간 갔던일이 있었다.

그때도 나는 별루 라운딩 경험이 없던 울마님을 데리구 무작정 푸켓골프장으로 올라갔다. 

다행히 첫날은 골프장에서 중년의 미국 아저씨 한명과 네델란드에서 여행을 왔다는 청년한명을 Join 시켜주어서

함께 라운딩을 하고, 다음날은 일본사람 한명과 프랑스사람 한명을 Join 시켜주어서 국제골프를 즐긴 경험이 있다.

골프라는 운동은 원래 외국어를 많이 쓰는 운동이라..~ Good shot.~!!   Par, Bogey, Birdie 정도에 You first..!! 

Think you.!!  정도만 영어로 구사를 해도 만사가 OK가 아닌가.? ㅎㅎㅎ

정말 흥미있고 즐거웠던 태국골프에 대한 미련이 아직도 내게는 남아 있었다.

       < 지난해에 푸켓으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 미국,네델란드 사람들과 우리 내외가 골프를 즐기던 모습이다. > 

우리가 도착한 호텔은 아세아호텔이라는 5성급 정도의 최고급호텔이었다.

우리는 여장을 풀고 이소장님 사무실이 있는 태국경찰청 청사를 지나서 하늘열차를 타고 쇼핑센타로 갔다.

방콕에서는 지하철이 지상 고가로 위로 다니면서 하늘열차라고 한단다.

방콕에서 제일 크다는 쇼핑센타에 들려 아이쇼핑을 하고 한국식 뷔페로 점심 겸 저녁식사를 하며 일정을 협의하였다.

내일 오전은 이소장님이 사무실에 나가야 하는 문제로 이국장님과 나는 골프를 치고 다른일행들은 쇼핑을 하기로하고

오후에는 유람선을 타고 일반 관광코스에는 잘 들어가지 않는 시장이나 백화점, 마트들을 둘러보는 일정을 잡았다. 

오늘은 네팔에서 바쁜일정을 보내면서 피로에 지친몸들을 좀 쉬는 쪽으로 일찍 호텔로 돌아와 잠을 청해 보았다.

 

  2008년 5월  10일 (토요일)

 

오늘은 일찍 일어나 방콕CC로 라운딩을 나가는 일정이다.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가면 300바트정도가 나오고 그린피가 1,600바트에 케디피가 250바트 그리고 카트료가 600바트

골프체 임대료는 500바트 정도 등을 합해서 모두 합해 약3,000바트정도가 드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약 10만원정도라면서

아주 자세한 메모를 해서 안내하면서 우리에게 각 5,000바트씩을 이소장님이 빌려 주었다. 

우리는 시키는데로 아침일찍일어나 호텔 후론트 앞에 있는 택시안내 데스크에 문의하니까 1,500 바를 요구한다.

호텔택시라 비싼 모양이라면서 일반텍시를 불러 달라고 해서 불러봐도 1,200바트를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아는 상식과는 너무 큰 차이가 나는지라 이소장님이 준 휴대폰으로 그에게 전화를 하니 미터기로 가자고 하란다.  

혹시나 하는 문제 때문에 우리에게 미리 현지폰까지 준비해준 이소장님의 배려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의 말데로 미터기로 계산해서 가는 택시는 정말 싸도 너무 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우리나라로 치면 아마도 진해에서 양산정도는 되는 거리라는 짐작이다.

톨게이트를 세번이나 지나면서 75바트의 통행료를 주고 택시미터기는 215바트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소장님 말데로 300바트를 주고 내가 미화 2불을 팁으로 주니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가기는 하는데...

내가 생각해도 방콕시내에서 방콕CC까지 택시를 미터기로 타고 온다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다. 

우리나라 택시들도 시외를 갈 때는 미터기로 계산을 하지 않지만...그가 돌아갈 때를 계산하면 손해나는 장사가 아닌가..?

오늘도 나는 그 택시기사에게 십, 이십, 삼십, 사십, 오십 하는 우리말 강의를 하면서 방콕CC에 도착하였다. 

한국사람이 운영을 한다는 방콕CC는 오래된 낡은 클럽하우스에 평지에 세워진 골프클럽이었다.

여기서는 Join 도없이 두명이서 운동화를 신은체로 두명의 케디의 도움을 받으며 라운딩을 즐기게 되었다.

오후에는 유람선을 타고 마트에도 들리고 쇼핑도 하면서 방콕을 즐기며 이소장이 거주하는 조금은 외각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도 들려보았다.

제법 큰 규모의 아파트단지 3층에는 사우나와 샤워시설이 딸린 수영장도 있었고, 무척 아름다운 미모의 부인과

아직은 나이가 어린 두 자녀들도 만날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다시 방콕의 야경을 즐기면서 우람선을 타고 저녁식사를 하는 CRUISE 일정이 예약되어 있었다.

CHAO PHRAYA PRINCESS CRUISE 호에 승선을 하니 방콕의 야경이 불야성을 이룬다.

우리나라 한강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방콕만이 아니라 파리의 세느강변에서도 느끼던 생각이다.

파리의 세느강변의 유람선도 강폭이 좁아서 그런지 유람선을 타고 다리를 지나며 저집은 누구누구가 자주 들리던

레스토랑이라며 설명을 할 정도였고 네델란드의 좁은 수로들도 한강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는 생각이다.

저녁이면 유람선이 지나는 쪽으로 일부러 불을 밝힌다는 상해의 유람선 여행도 한강에서는 연출이 어려울 것이다.

뷔페음식을 즐기면서 2시간동안 진행되는 유람선 여행은 중년의  두 여인네가 부르는 잔잔한 팝음악과 트럼펫소리가

어울리면서 더 한층 방콕의 밤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기에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우리에게 주었다.  

       < 두 여인네의 트럽펫 연주와 잔잔한 팝음악이 분위기를 더욱 살려 주었다.>

 

나는 긴 여행을 마무리 하면서.~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어렵고 긴터널을 지나는 네팔의 몽골리안들을 보았다.

우리가 보기에는 정말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하는 그들 같았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으로 행복을 �는 인생의 여정을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