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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이야기/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놀부전에 나온 흥부(興夫)의 한계

by 장복산1 2009. 12. 22.

지난 12월 22일자 동아일보에는 「北 '朝美' 대신 '美朝' 표현」이라는 기사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잇달아 '조미(조선-미국)' 대신 '미조'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확인을 했다는 기사다.

아마 우리도 '韓美'가 우리에게 더 익숙한 단어지 '美韓' 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보지도 못했거니와 만약에 그런 단어를 쓴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무척 어색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이와 같이 서로 비교되는 단어를 함께 쓸 때는 어느 글자가 앞에 오느냐 하는 문제가 매우 중요한 의미와 가치가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흥부와놀부는 분명히 형인 놀부가 뒤에 오고 항상 동생인 흥부가 앞에 자리잡는 이유도 퍽 흥미로운 일이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형인 놀부가 앞에 와야 당연한 일이고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주기 전 까지는 부와 권세를 누리며 흥부에게

일방적인 권한을 행사하던 형인 놀부가 앞자리에 와야 하는데 동생인 흥부가 먼저고 줄임말도 보통은 흥부전이라고 하지 놀부전

이라고 쓰지 않는 이유도 무척 흥미롭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최근에 나는 흥부와 놀부를 비교분석한 만화 한편을 보면서 흥부전에 흥미를 더하고 있다.

무한경쟁시대인 21세기의 현대인들에게는 흥부와 놀부의 가치관은 수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흥부는 비록 착한 마음씨는 가지고 있지만 재산이라고는 전혀 없는 무능력자에 형에게 빌 붙으려고 하는 자립심 부족에 스스로

일을 하지 않는 진취성 부족, 그리고 돈도 없는 주제에 가족계획도 하지 않는 계획성 부족에 요행으로 성공하려는 기회주의적

케릭터라는 비판이다.

반면 놀부는 많은 재산을 허투로 쓰지 않는 근면 성실함, 그리고 진취성을 가지고 있으며 적극적인 추진력도 뛰어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동생이라고 해도 공과 사의 부문에는 칼 같은 구분을 하는 올곧은 성격이라는 평이다.

 

여기에 대한 반론도 무척 흥미로운 것은 흥부가 무능력 해서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유산을 전부 놀부가 가지고 갔다는 주장을

하면서 심지어 모든 생산수단인 땅을 놀부가 모두 갈취 해 가는 압도적 폭거를 자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흥부는 죽도록 일을 했고 손이 부르트도록 품을 팔고 베를 짜도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현실을 외면하고 왜곡하며 진실

을 가리고 의도적으로 흥부를 질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주장까지 한다. 

나는 최근 지역에서 시민운동에 참여하면서 나 자신이 놀부로 비치는 모습도 보았고 흥부의 모습도 보면서 과연 시민들이 현실에

참여하는 한계나 경계선을 어떻게 구분하고 스스로 판단하느냐 하는 문제의 해답을 아직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번 지방자치단체의 통합문제를 거론하면서 절차상의 하자를 지적하고 법률위반까지 의심되는 행자부의 행태를 마치 유산

마저 갈취하는 놀부같은 심보에 비유하면서 분노하고 항의도 해 보았지만 역부족인지 스스로 능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어차피 통합은 진행되고 있으며 이제는 어떻게 더 현명한 방법으로 통합에 참여하는냐 하는 문제를 따질 것인지 아니면 끝까지 

투쟁을 하면서 저항해야 하는지 하는 판단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민운동을 하면서 정당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다가 중단할 경우 "지까짓 것 들이 그러다 말지 별수 있느냐.?"는 빌미를 주며 이제는

어떤 비판이나 정당한 주장에도 그들은 귀를 막아 버리며 외면하고 말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끝까지 저항하고 투쟁하면서 실정법 보다도 무서운 땟법을 쓰더라도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는 것이 진정한 시민운동이라

는 주장에도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사실은 자칫 시민운동을 빌미로 우리 자신이 또 다른 완장을 차는 우(愚)를 범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동생인 흥부가 형인 놀부 앞에 그 이름이 올라가고 후대에 길이 전하는 이유는 흥부가 착하고 선하다는 케릭터의

가치도 영향을 주겠지만 형수에게 주걱으로 빰을 맞으면서도 참고 인내하는 흥부는 언제나 약하고 힘이 없어 당하는 평범한 백성들

과 한편같은 동질감의 발로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무리 힘이 없고 권력에 당하기만하는 시민운동일지라도 그 일이 정당하고 원칙과 상식을 존중하는 논리에 충실한 시민

운동을 하다보면 언젠가 모든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을 받으며 권력앞에 그 이름을 올리는 놀부전의 흥부같은 진정한 시민운동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시민운동은 가로등의 역할에 만족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