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고싶은 이야기/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고집(固執)과 주관(主觀)

by 장복산1 2011. 1. 5.

고집(固執)과 주관(主觀)


세계 최대 갑부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자서전에서 아들을 키우는 과정이 ‘악몽’이었다고 표현했다. 학교 공부와는 담 쌓고 컴퓨터와 관련 책에만 빠져 있었으며, 결국 하버드 법대를 중퇴하고 컴퓨터 회사를 차렸을 정도니 빌 게이츠는 부모마음에 쏙 드는 모범생은 아니었을 듯싶다. 분명히 빌 게이츠도 고집불통이거나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신념이 넘치는 사람일 것이라는 짐작이다.


전국시대 조(趙)나라 때 조괄(趙括)은 명장이었던 아버지의 병서를 맹목적으로 읽은 인물이다. 진(秦)나라가 쳐들어오자 염파(廉頗) 대신 장수가 돼 전장에 나간 그는 임기응변을 모르고 병서의 가르침대로만 전쟁을 치르다 참패한다. 이것은『사기(史記)』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나오는 교주고슬(膠柱鼓瑟)의 고사다. 아교로 기러기발(雁足)을 붙여 놓고 거문고를 타는 것처럼 고지식한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고집(固執)이라는 말의 어원이 되었다.


앞뒤가 꽉 막힌 이런 고집불통을 우리말로는 벽창호라고 하기도 한다. 원래 벽창우(碧昌牛)에서 나온 말로, 평안북도 벽동(碧潼)과 창성(昌城)지방의 소가 크고 억세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고집 센 사람을 동물에 비유하는 것도 동. 서양에 차이가 없다. 벽창호는 물론, 황소고집이란 직설적 표현처럼 우리는 소를 고집의 상징으로 보지만 영어권에선 노새(mule)를 고집의 화신으로 꼽는다. 천성적으로 고집이 센 사람도 있지만 누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고집이 는다고 한다. 정신적. 육체적 능력이 떨어지면서 매사를 자신의 과거 경험이나 기억을 기준으로 판단하려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 고 하더니 나도 나이께나 먹어서 시민운동을 한답시고 너무 고집스럽게 원리원칙만 따지고 여간해서 타협의 여지를 보이지 않는 자신의 모습이 자칫 어떤 주관이나 신념도 없는 황소고집 같은 사람으로 비치는 모습이 걱정스러워서 하는 변명이다. 원래 고집이란 단어가 꼭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최씨 고집`이란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잔재주를 피우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파온 사람을 일컬을 때 쓰는 긍정적 표현이다. 독일에서 박사만큼 사회적 대접을 받는 마이스터(장인)들도 자기 일에 대한 철저한 고집으로 오늘날의 명성을 얻었다.


보통 고집은 부정적 이미지로, 주관은 긍정적 이미지로 비춰져왔다. 그러나 고집과 주관은 얼핏 종이 한 장 차이 같기도 하지만 분명 그 결과의 차이는 매우크기 마련이다. 주관은 몇 가지 전제요소가 요구된다. 지식과 학문적 기반, 사색과 고찰, 상대성과 절대성을 보는 눈, 삶의 경험 등이 필요하고 고집은 역시 이런 내용들이 부족하거나, 갖고 있지 않을 때 고집으로 보인다. 주관이 시간성을 가지게 되면 소신으로 발전하고, 확고한 소신은 자연히 고집으로 발전하기 마련이다. 고집 센 사람은 보통 의지가 강하고 자기주장이 뚜렷한 특징을 지닌다.


아름다운 제주에 치유의 길, 평화와 행복의 길, 상생의 길을 내는 여자, 제주올레의 서명숙 이사장은 여성 언론인으로서 치열하고 숨 가쁘게 살다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난 산티아고 길에서 고향인 제주에 길을 내겠다는 운명과도 같은 영감을 얻는다. 그는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가장 모진 욕을 듣고, 주변 사람들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자신의 고집같은 주관으로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이제는 제주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여행 문화까지 바꾼 제주올레길을 연 너무도 아름다운 여자가 되었다.


국민들의 꿈을 먹고사는 정치권은 사사건건 여와 야가 충돌하며 소통하고 타협하지 못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어떤 신념이나 주관때문인지 고집불통이 문제인지 안타까운 생각이다. 야권단일후보로 도정을 책임진 김두관지사의 고집도 보통은 넘는다는 느낌이다. 시장면담을 요청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시장실 앞에 소음측정기까지 동원하는 박완수 창원시장의 고집도 만만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새해에는 나도 주관과 신념을 가지고 세상을 살되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고집은 너무 부리지 말자는 다짐을 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