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고싶은 이야기/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진해를 팔아 먹은 매향노(賣鄕奴) 논쟁

by 장복산1 2012. 2. 5.

진해를 팔아 먹은 X

요즘 진해에는 "진해를 팔아 먹은X"이 어디를 가나 화제의 중심에 있습니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지난 30일 오전 11시쯤 어느 행사에 초청된 진해출신 3선 의원인 김학송 국회의원이 민선 3선시장을 지내고 이번에 무소속으로 제19대 총선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김병로 전 시장에게 다가가 “오랜만에 뵙습니다”라고 두 차례에 걸쳐 인사를 건내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김의원은 또 다시 “인사를 하는데 왜 받아주지 않습니까”라고 했지만 김 전 시장은 거절하면서 “진해를 팔아먹은 X한테 왜 인사를 받냐”고 반문을 했고, 이에 김 의원은 “방금 뭐라고 그랬느냐. 진해를 팔아먹은 X라고 했느냐.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런 막말을 해도 되느냐”라고 따지면서 문제가 불거진 모양입니다.

 

김 전 시장은 자신이 한 말은 진해시민들의 정서를 대신 전달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김학송 국회의원 측은 언쟁 다음 날인 31일 김병로 전 진해시장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창원지검에 고소장을 접수했습니다. 김학송 국회의원은 자신을 비판한 최연길씨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이 있습니다. 최종 공판이 오는 10일로 예정된 가운데, 이번에는 김병로전시장 마저 명예훼손혐의로 고소를 하면서 "진해를 팔아 먹은X"은 진해최대의 화두로 떠 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과연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까 하는 생각입니다.

 

아직도 쓰지 못한 독후감

지난해 10월에 나는 경남도민일보와 쥬스컴퍼니가 주최하고 갱상도 문화학교 추진단이 주관한 '합천 명소 블로거 탐방단' 파워블로거 팸투어(Familiarization Tour)에 참여한 일이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지내고 친일문제를 연구하는 정운현 선생께서 동행했습니다. 정선생은 합천으로 이동하는 버스안에서 자신이 블로거탐방에서 꼭 보아야 할 비석이야기를 했습니다.

 

합천 해인사 일주문을 지나면 홍제암(弘濟庵)이라는 암자가 있다고 합니다. 홍제암은 임진왜란 때 산중의 승려들을 규합해서 왜적과 맞서 싸웠던 사명대사 유정이 입적한 곳이라고 합니다. 대사가 입적한 2년 뒤 홍제암 오른편 부도밭에 대사의 일대기를 기록한 석장비를 세웠는데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이자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이 썼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문제는 그 석장비를 친일승려인 변설호가 일제에 아부한다고 합천경찰서에 고자질을 해서 네 조각을 낸 것을 1958년에 다시 접합하여 복원한 흔적이 열십자(+)로 선명하게 남아 있다고 합니다. 나는 나이가 60이 넘도록 세상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열십자가 선명한 사명대사의 석장비를 보고 일제가 송진채취를 한다고 소나무 마다 남긴  V자 모양의 흉한 흔적들을 직접보고 사실은 처음으로 일제의 만행을 실감했습니다. 그냥 영화나 책에서 보던 느낌과 또 다른 감정이 밀려옵니다.

 

그리고 그 날 정운현 선생이 지은 '친일파는 살아 있다.'는 신간이 출판사에서 나오자 마자 저자에게 보넨 4권을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선물로 전달하겠다고 합니다. 블로거 팸투어에 참여한 20여명 중 행운으로 받은 책을 들고 나는 저자에게 꼭 독후감을 쓰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쓰지 못한 "친일파는 살아 있다."는 책의 독후감 때문에 저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부담과 고민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책은 읽었지만 독후감을 쓰지 못하는 것은 책을 읽고 더욱 나를 혼란하게 하는 친일파에 대한 모호한 경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나는 "친일파는살아 있다." 는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은 친일파들이 우리 주변에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습니다.

 

너무 상세하게 기록한 정선생의 책은 더욱 나를 혼란하게 만들었습니다. 심지어는 어느 면서기의 행적까지 소상하게 적었더군요. 일제에 충성하던 친일 형사의 생각까지 읽을 수 있는 자료들을 어디서 어떻게 찾았는지 현실감이 살아 숨쉬는 책입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친일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어쩌면 한일합병이라는 역사가 만들어낸 시대적 아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일제에 누가 얼마의 국방헌금을 냈다는 사실이나 호구지책으로 한 면서기를 어떻게 친일의 경계로 구분할지 더욱 혼란 스러워 집니다.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문제에 대한 정선생의 문제제기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내가 만약 그 시대를 살았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어쩌면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로 나도 친일파로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금도 떨쳐 버리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한일합병에 앞장섰던 이완용을 우리는 나라를 팔아 먹은 매국노(賣國)로 지칭합니다. 그래서 나는 진해, 마산, 창원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통합에 앞장섰던 시의원 국회의원을 포함한 지역정치인들에게 고향을 팔아 먹는 매향노(賣鄕奴)라고 몰아 세우며 분노했던 사실이 있습니다.

 

정치하겠다면 공동정범의식 가져야

그러나 지금 과연 누가 누구에게 진해를 팔아먹은 사람이라고 돌을 던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최소한 나는 지역에서 고향을 지켜야 할 정치적 책임이 있던 정치인들이나 지역 원로들은 공동정범(共同正犯)의 책임의식을 느끼며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권력이란 한번 쥐었다 하면 지팡이 집고 걸어서 화장실 갈 힘만 있으면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권력이라고 하지만 "진해를 팔마 먹은 X"을 핑계로 이번 총선에 난립하는 진해 국회의원 후보들을 보면서 이유 없이 자꾸 심사가 뒤틀리는 나 자신의 문제에 화가 납니다.

 

우선은 야권호부 단일화 과정에 정정당당히 참여해 자신의 능력과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주판알을 튕기는 모습도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고집도 나를 화나게 합니다. 나는 '졸속 통합반대 범진해시민대책위'위원장이라는 경력을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명함에 당당하게 사용하는 후보의 명함만 봐도 화가 납니다. 나는 '창원 을' 진보후보초청 블로거 인터뷰에서 블로거들의 혹독한 비판에도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의지와 논리를 펴는 후보들의 정치적 소신을 보았습니다. 내가 비록 그들을 비판하는 글을 쓰면서도 신이 나고 기분이 좋았던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진해는 후보들을 여섯명이나 인터뷰했지만 도대체 글쓸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글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 글"을 다 써 보았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나는 진해를 팔아먹은 매향노(賣鄕奴) 논쟁이나 하는 제19대 총선 진해 국회의원후보들에게 '창원 을' 진보후보초청 블로거 인터뷰를 하고 파워블로거 달그리메님이 쓴 창원을, 경선후보들 자신을 한번 돌아봐라 를 읽어 보기를 권합니다. 달그리메님 글의 마지막 구절이 가슴을 찌릅니다. "죽어봐야 저승을 안다고 하지만, 지금의 진흙탕 싸움에서 허우적거리다 한나라당에 지고 나면 모든 게 끝입니다. 그 책임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진해를 팔아 먹은 놈이 누구인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진해에서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이라면 최소한 공동정범의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지자체 통합을 막지도 못하고 이제와서 분리독립을 주장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입니다. 국회의원 한번하겠다고 시민들을 무시하며 사기치면 절대 안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