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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이야기/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시민운동과 컨슈머리포트

by 장복산1 2012. 4. 6.

비영리단체인 미국 소비자협회 (Consumer Union)가 1900년 초반 설립한 컨슈머리포트는 매월 일정 제품을 선정해 업체별 성능, 가격 등을 비교분석해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 인력만 수백명, 한해 예산만 수천억원이고 이를 신뢰하는 미국과 캐나다의 소비지들은 수십달러를 지불하면서도 해당 잡지를 구독합니다. 이유는 독립성과 공정성 때문입니다.

 

컨슈머리포트는 미국에서도 광고비를 받지 않고 운영할 정도로 소비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아이폰4의 데스그립문제를 다루어 잡스로 하여금 이벤트를 개최하고 무료 범퍼를 제공하게 만든 것은 상당히 유명합니다.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와 한국소비자원은 한국판 컨슈머라포트를 선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판 컨슈머 리포트를 운영하는 인력은 불과 몇 명이고, 한해 예산도 10억 미만이라고 합니다.

 

한국판 컨슈머리포트 1호는 '등산화의 품질 비교 보고서'의 문제점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한 블로거가 한국판 컨슈머 리포트를 실난하게 비판하며 반박한 포스팅이 매우 이체롭습니다.


이 블로거는 한국판 컨슈머리포트가 '등산화 품질 비교분석 보고서'를 발표하자 언론사들은 '이제 한국판 컨슈머리포트가 기업의 흥망을 좌우할 것이다.'' 염라대왕의 명부네, 업계가 벌벌 떨다.' 등 기사를 쏟아 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추천받은 K사의 제품이 3일동안 100컬레가 더 팔렸다는 우스쾅스러운 기사까지 실렸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아웃도어 전문블로거는 한국판 컨슈머리포터보다 더 정교한 분석자료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코오롱 스포츠의 페터, K2체이서는 경등산화이고, 블랙야크의 레온은 트레킹화고 노스페이스의 니아와 트렉스타의 블루릿지 하이커는 중 등산화인데, 코란도자동차와 티코랑 어떤 것이 더 가볍나요? 티코가 가벼우니까 좋습니다. 추천드립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블로거는 자신의 블로그포스팅에서 등산화의 내굴곡성에 대한 오해, 접착박리강도에 대한 오해, 외피와 외관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마지막으로 테스터의 자질부족문제를 지적하며 글을 마무리 했습니다.

 

등산화에 대한 컨슈머리포트가 공정거래위원회가 주관했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소비자연맹과 소비자단체들이 공정성있는 연구기관들과 합동으로 진행했다는 문제에 의문을 제기 합니다. 소비자 연맹과 소비자 단체라면 전문성이 없는 김여사, 김기사가 테스터로 참여했다는 뜻이고 공인성 있는 인증기관에 의뢰하면 연구원이 기계에 놓고 로봇처럼 내굴곡성 등의 항목을 평가했을 것이라는 문제 제기를 합니다.

 

한국판 컨슈머리포트 2탄은 수입 유모차의 가격 거품에 대한 정보였습니다. 부풀려진 유통 마진을 공개해서 소비자들의 열광같은 격려를 받는 것, 그것은 소비자 고발이나 PD수첩이 해야될 일입니다. 2탄도 컨슈머리포트의 기본과 본질을 크게 벗어난 것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국판 컨슈머리포트가 해야할 일은 예를 들어 유아용 젖병의 기능성, 재질에 포함된 환경호르몬 페놀-A의 함유량, 플라스틱인지 유리젖병인지 그리고 가격을 종합적으로 비교해서 소비자가 가격, 품질, 기능성, 유해성분 등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제품을 선택하게 해 줘야 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원가가 134원인 캐나다 빙하수가 왜 한병에 5천원에 팔리는지에 대해서는 소비자고발, PD수첩 등에 맡기라는 이야기 입니다. 미국 컨슈머리포트와 한국판 컨슈머리포트는 무엇인가 근본이 뒤틀린 분명한 차이가 보입니다. 어떤 기본이나 원칙은 무시한체 외형이나 시스템만 흉내를 낸다고 해서 미국 컨슈머리포트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민운동은 말 그대로 시민에 의해 이루어지고, 이끌려가는 운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기 역시 순수해야 합니다. 물론 결과가 동기를 추론하는 근거가 되지는 못하지만, 만일 우리 사회 전반의 개혁을 위해 시민운동에 몸담았다면, 시민운동의 본연의 기능, 즉 정치, 사회, 그리고 자본의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 비판하는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운동이 이러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때, 진정한 「제도적 차원의 개혁」이 성공할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시민운동의 지향점 역시 “체계(System)”에 맞추어져야 합니다. 즉, 정치적 현상을 인격화해서, “깨끗한 인물”을 통해 개혁을 “깨끗한 사람” 중심으로 이끌기 보다는, 어떤 사람이 정치에 몸담아도 “어쩔 수 없이” 깨끗한 정치를 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체계를 구축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시민운동가들의 정치 참여를 “사람을 통한 정치의 정화”차원에서 이해한다면, 이는 진정으로 시민운동이 지향해야할 목적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은 물론, 한국 정치문화의 병폐중의 하나인 정치의 인격화, 그리고 국가주의의 또다른 표현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시민운동가들이 제도정치권으로 진입하는 측면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시민운동은 정치 엘리트 충원을 위한 중간 과정으로 전락할 위험마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시민운동의 이상적인 모습은 무당무파로서 정치적 야심 없이 사회의 모든 문제에 곧은 시각을 지니는 것입니다. 낙천운동같은 시민운동의 적극적 정치소비운동이 과연 시민운동의 범주에 속하느냐 하는 문제는 생각할 여지가 있습니다.  

 

 

미국의 컨슈머리포트가 소비자의 입장에서 정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높은 신뢰를 보넵니다. 이와 같은 소비자들의 높은 신뢰는 생산자들이 스스로 도저히 넘지 못할 막강한 권한과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시민운동도 시민들의 입장에서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치적 평가를 내 놓아야 시민들로 부터 높은 신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정치적 이슈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정당이나 정치인들은 정치 생산자들 입니다. 시민들은 정당이나 정치가들이 생산해서 제시하는 정책이나 공약을 평가하고 취사 선택하는 정치 소비자들 입니다. 시민운동가들은 정치를 생산 유통하는 정당이나 정치가들의 정책이나 공약을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비교 평가하고 비판하는 정치정보를 정치 소비자들인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시민운동이 추구하는 사회개혁이나 정치적 목적달성을 위해서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논리로 시민운동을 이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져냐 하는 논쟁으로 발전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컨슈머리포트가 소비자들의 높은 신뢰를 바탕으로 아이폰4의 데스그립문제를 다루어 자존심 강한 잡스로 하여금 이벤트를 개최하고 무료 범퍼를 제공하게 만든 힘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시민운동과 컨슈머리포트를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민운동은 정치적 생산자 입장인 정당이나 정치인들과 분명한 경계가 필요합니다. 오직 정치적 소비자인 시민들의 입장에서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 사실과 정보를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생각입니다. 자칫 한국판 컨슈머리포트와 같이 김여사, 김기사가 평가하는 정치수준을 넘지 못할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시민운동가의 정치참여에 대한 찬,반 의견 자료를 옮겨 봅니다.

 

찬성- 시민운동의 핵심은 권력에 대한 비판이다. 그런데 권력과 정치권이 문제가 있다면 시민운동의 외부 비판만으로 해결되기 힘들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러가야 하는 것처럼 직접 참여하여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시민운동가의 정치 참여가 시민운동 전체의 순수성을 훼손시킨다는 것은 과도한 비약이다. 시민운동 출신들이 정치에 참여하여 변혁을 이루어 내면 시민운동의 역량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물론 시민운동을 하나의 경력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은 경계해야 하지만 국민들의 시민운동에 대한 관심은
커질 것이다.

 

반대- 시민운동가들의 정치 참여는 시민운동의 순수성을 훼손할 수있기 때문에 지양되어야 한다. 이들이 직접 정치권에 참여하면서부터 스스로가 감시해야할 대상인 제도권 권력에 대한 감시기능이 약해져 정치적 후퇴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역량있는 활동가들이 정치권으로 빠져나가면서 시민운동의 본래기능에 손실이 우려된다. 시민운동가들의 정치진출이 빈번해지면서 시민단체 활동이 정치 진출을 위한 발판이나 스펙으로 전락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들이 시민운동의 순수성을 의심하게 되고 참여가 약해질 수 있다. 시민운동가들은 비판과 대안제시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