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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이야기/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인터넷파워를 실감한 33년만의 해후(邂逅)

by 장복산1 2012. 4. 12.

내가 지난 1965년 해군에 입대하면서 나는 진해 사람이 되었습니다. 진해에 머물러 살면서 아들 딸 나아 기르고 한 세월이 47년을 넘기고 있습니다. 대충 40여년 전에 진해역 옆에서 리라사진관을 개업해서 운영하던 시절입니다. '진해 Amateur 사진동우회'라는 사진써클을 창립해서 활동하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 시절만 해도 사진 기술이 그리 많이 발전하지 못했던 사절이라 카메라사진 무료강습회도 개최하고 을숙도같은 인근 촬영지로 야외 실습촬영도 나가고 했습니다. '진해 Amateur 사진동우회' 를 인연으로 리라사진관에서 자주 만나고 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진동우회 연구부장을 맏았던 진해여고 문재세선생, 기술부장은 진해역 TMO에 근무하던 유호원 육군중위, 학술부장은 유재활 해군중위가 했습니다.

 

무척 다정하게 서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만나던 사람들이 제대를 하고 전근을 가면서 어떻게 혜어졌는지 확실한 기억도 없이 서로 혜어지고 말았습니다. 나도 다른 일로 바쁘게 세상을 살다보니 사진동우회 일이나 사람들도 잊어 버리고 살았던 모양입니다. 얼마 전 사진동우회에서 같이 취미활동을 하던 홍연묵 선생이 그 시절을 회상하며 국수나 한 그릇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진해 Amateur 사진동우회 최고령 회원이던 윤석태 선생이 그 시절 운영하던 국수집을 아직도 운영한다고 하니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닙니다. 

 

윤선생이 운영하는 골목분식을 찾아가 국수를 한 그릇하며 30여년 전에 있었던 추억들을 회상하며 맛있게 칼국수를 먹었습니다. 흘러간 세월을 아쉬워하며 '골목분식을 29년 지키는 칼국수 이야기' 라는 글을 내 블로그에 포스팅한 일이 있습니다. 글에는 당연히 그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와 골목분식 사진이 포함되기 마려입니다.

 

"진해 시민들에게 무료사진강의도 하고 야외출사도 함께 다니던 열정들이 새삼 그립습니다. 그 때 그 시절 진해아마추어사진동우회 연구부장을 하던 진해여고 문재세 선생도 생각이 납니다. 기술부장을 하던 진해 TMO 유호원 중위, 학술부장을 하던 유재활 해군 중위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골목분식 사연을 읽은 실비단 안개님은 댓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물론 나를 위로하는 내용입니다.

사실 나는 별 의미 없이 지나가는 말 정도로 실비단안개님 댓글을 읽었고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답글을 달았습니다. 그러나 어제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33년만의 해후(邂逅)로 인터넷파워를 실감했습니다. 골목분식에서 하던 이야기들이 나에게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33년전 진해 Amateur 사진동우회 학술부장을 하던 유재활 중위(?)의 전화를 받았던 것입니다. 단서는 골목분식 간판에 있는 전화번호 였습니다.

 

 

그는 지금 미국 LA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에 휴가차 가족과 함께 귀국했는데 마침 진해 군항제가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이춘모라는 이름만 기억하고 인터셋 써핑(surfing)을 시작한지 한 시간만에 골목분식 간판을 찾았다고 하는군요. 나는 그를 마중하러 창원역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나는 놀라운 인터넷 파워를 실감하며 유재활 중위(?)와 33년만의 해후를 했습니다. 장복터널이 개통되기 전에 진해를 떠난 그를 생각해서 우리는 마진터널을 거쳐 진해로 들어 왔습니다.

 

 

 

 

창원역에서 속천 횟집 점심식탁에 도착하기까지 잠시도 이야기가 쉬지 않고 이어집니다. 아마 이런 것을 가지고 정이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그도 내 블로그 글을 읽는 순간 가슴이 뭉쿨하더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반세기가 지나도록 하나도 변하지 않은 진해역을 보면서 신기한 모양입니다. 우리가 30여년 전 진해역 주변을 맴돌며 생활하던 시절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젊은 해군장교 시절에 진해역 옆 2층에 방을 얻어서 생활하던 집에도 들려보고 기념사진도 촬영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사람은 지나간 일들을 망각하는 기능이 있어서 항상 새로운 정보를 받아 드리고 저장했다 활용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지워진 기억도 되 살리는 능력도 오직 인간에게만 신이 준 선물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젊은 시절이 그립고 아쉽기는 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은 없지만 마음만은 풍성했던 시절 우리는 많은 꿈을 이야기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가끔은 술이 한 잔되면 나는 그 시절 이야기를 합니다. 진해 중앙시장 안에 있던 충주집으로 기억하는 술집에서 밤이 늦도록 소주잔을 기울이며 내가 '진리'를 부정하면 문선생과 유중위는 나의 억지같은 주장을 반박하던 실없는 논쟁을 하던 기억은 지금도 즐겁기만 합니다.

 

       

내가 진해에서 처음 사업을 시작했던 진해역 옆 리라사진관은 지금도 주인이 바뀌었을 뿐 영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가 진해를 떠나면서 전자메일로 전해 온 내용입니다. [영영 묻혀 버릴 줄 알았던 30여년의 기억을 불과 3시간 여 만에 다시 복구해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나는 그가 가족들과 함께 진해를 방문해서 만든 좋은 추억들을 20년, 30년이 지난 어느시절 오늘을 회상하며 진해를 다시 찾을 것을 기대합니다. 아마 그 때도 나는 진해를 지키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