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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이야기/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창동, 오동동 골목투어 개발해야

by 장복산1 2012. 10. 3.

마산사람들은 마산이 민주화의 성지라는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실제 마산은 옛부터 자연스럽게 민의가 표출되는 발원지 같은 그런 도시였던 모양입니다. 창동예술촌 블로거팸투어 마지막 일정은 지역 사학자인 박영주씨 안내로 창동, 오동동 골목투어가 있었습니다. 박영주씨가 우리를 제일먼저 안내한 장소가 구, 시민극장 자리입니다.

 

나도 마산 시민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하던 기억이 나는 곳 입니다. 마산 시민극장은 1907년경 마산 민의소가 있던 자리가 마산구락부로 바뀌고 다시 1935년에는 일본인이 인수하여 공락관이라는 최초의 극장을 운영하던 자리라고 합니다. 해방 이후 이 극장은 시민극장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오랜기간 마산 창동의 중심지 역활을 했습니다. 마산 시민극장과 강남극장이 지역영화관의 쌍벽을 이루던 시기가 기억 납니다.

 

박영주씨가 우리 일행을 먼저 시민극장 자리로 안내한 이유가 있습니다. 박영주씨 설명에 따르면 6,25 전쟁으로 인한 이념적 갈등은 마산에서 1,681명의 양민이 수장되는 끔찍한 사건이 있었고, 그 발단이 시민극장이었다고 합니다. 1950년 7월 15일 시민극장에는 시국강연을 가장해서 마산, 함안 인근의 보도연맹원들을 모두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극장문이 잠기면서 마산교도소를 거쳐 바로 마산 앞바다에 수장이 되고말았다는 설명입니다.

 

                  <지금은 휴대폰가개와 의류판매점으로 변해버린 시민극장자리 사진입니다.>

 

마산 오동동 옛 민주당 마산시당 앞에는 3,15의거 발원지 표지판이 있습니다. 시민혁명인 4,19혁명의 시작이 3,15의거고 그 발원지가 마산입니다. 마산은 개항 100년이 넘는 고도의 항구도시로 지형적으로는 해운항만, 해양관광, 임해공단 등 발전가능성이 내재된 전국 7대 도시에 포함되던 대 도시 였습니다.

 

마산은 3,15의거 뿐 아니라 유신을 종식시킨 부마항쟁의 발원지이기도 합니다. 박영주씨 안내를 받으며 돌아본 창동, 오동동거리에는 반경 1km 이내에 무수한 근대사 역사의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보도연맹 등 민간학살 진상규명운동을 시작했던 故 소담 노현섭선생 기념사업회도 있습니다.

 

    

마산 창동이라는 지명이 생기게 된 내력을 지니고 있는 조창이 있던 자리도 표지석 하나가 외롭게 지키고 있습니다. 조창이란 조선시대 나라에 세금으로 바치던 현물들을 거두어 보관하던 창고라고 합니다. 조창인 창고가 있는 동리라고 해서 창동이라는 지명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조창을 지나 조금 내려 가다 보면 마산에서 처음으로 민간도선관으로 문을 열었던 책사랑이 있습니다. 이제는 담쟁이 넝쿨이 늘어진 커피숍으로 변해 있습니다. 바로 아래는 마산의 역사와 견줄만큼 오래된 남성동성당이 이색적인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군요. 앞에 있는 남성동 우체국도 오랜 역사를 간직하며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다시 골목을 조금 돌아 올라 오다 보면 마산 부윤을 지낸 옥기환선생과 건준회원인 명도석선생이 설립한 원동무역 건물은 아직도 내부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건물 앞에는 원동무역 표지석이 있지만 주차된 차들 때문에 사진찍기도 어려울 정도로 표지석을 세운 의미가 크게 감소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골목길을 따라 조금 걸어 나오니 지금은 경남은행으로 바뀐 마산시외버스 터미널자리가 보입니다. 박영주씨가 설명을 하지 않아도 나는 마산에서 진해를 가려면 늘 버스를 타던 기억이 뚜렸한 장소입니다. 나는 박영주씨가 설명하는 삼성병원 자리는 잘 기억을 하지 못하지만 대광예식장은 기억이 납니다. 지나가던 골목에서 누군가 극동예식장 자리도 이야기를 하는데 듣고 보니 지금은 너무 작아 보이는 군요.

 

잠시만 더 걸으면 그 유명한 오도동 골목에 도착합니다. '오동추야 달이밝아'라는 노래가 마산 오동동에서 유래한 것인지 확실한 근거를 찾지는 못한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마산 오동동은 오동추야를 지역시장의 자체브랜드로 개발해서 '오동추야'라는 상인신문도 발간하고 있습니다. 오동동에는 옛 민주당 마산시당 건물 앞에 3,15의거 발생지 표지판이 있고 마산의 술문화를 대표하는 통술집 골목과 항구도시의 상징같은 아구찜 몰목도 있습니다. 너무 많은 특성과 마산의 근대문화 자산들이 아직도 숨쉬고 있습니다.

 

 

 

 

오동동 지근거리에 있는 마산형무소 자리까지 돌아 보고 다시 '창원시 상권활성화재단' 사무실에 도착해서 창원시 도시재생과에서 준비한 프리젠테이션으로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설명을 듣기까지는 불과 한 나절정도 시간으로 충분했습니다. 나는 걸어서 충분할 정도의 지근거리에 있는 마산의 근대문화유산들과 창동예술촌을 접목하는 골목투어 프로그램을 서둘러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역의 역사문화 해설사를 양성하고 마산의 근대문화 유산들을 정비해서 창동, 오동동 거리를 마산시민들이 자부하는 민주화의 성지로 가꿀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자라는 세대들에게 고조선의 역사와 신라삼국시대를 가르치는 역사교육도 중요하지만 지역의 근대사를 올바르게 가르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지역의 학생들이 3,15 의거 발생지와 부마항쟁의 역사적 현장에서 지역의 역사를 배우고 가족들과 창동예술촌에서 살아있는 예술을 체험하며 저녁을 먹고 즐기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