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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이야기/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박정희의 향수가 느껴지는 그림자로 남아있는 진해 청지회

by 장복산1 2013. 1. 18.

며칠 전에 진해 청년지도자협의회의 신년인사회를 다녀왔습니다. 진해청년지도자협의회는 내 인생의 가장 찬란했던 젊은 청년시절인 30세가 되던 1977년 6월 16일 입회해서 만 45세가 되도록 15년이 넘게 몸담았던 단체입니다. 이제는 나이든 사람들이 모이는 특우회에서 서로 만나며 교분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매년 본회의 회장 이취임식이나 신년 인사회를 하는 경우같은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에 초청을 받아 지역의 젊은 청년들과 자리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진해 청년지도자협의회 하면 생각나는 것이 한국적 청년단체가 태동하고 창립하던 시절의 기억들이 먼저 떠 오릅니다.  

   

우나라에는 청년회의소(JC)라는 청년단체가 유일하게 활동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청년회의소는 6,25전란 중 평택에 주둔 중인 미 제5공군 정훈 장교 “메닝스포츠우드”중위로부터 JC에 대해 소개를 받은 12명의 젊은이들이 1951년 12월23일 경기도 평택시에서 최초의 발기모임을 거쳐 창립한 국제단체입니다. 지금은 전국 350여 곳의 지방 JC에 17,000여명이 각지역에서 청년봉사활동을 하고 있지요.

 

내가 진해청년지도자협의회에 입회한 1977년에 진해는 제2대 회장이 주관하는 경상남도 제8기 하기수련회를 남해 송정해수욕장에서 개최 했으니 역산을 하면 1969년의 일로 기억을 합니다.

 

당 시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나라에는 외국에 본부가 있는 청년봉사단체만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청년단체의 조직을 지시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막강한 힘을 행사하던 집권당인 공화당이 스폰서를 해서 한국적 청년상을 표방하는 전국 청년지도자협의회가 창립되었습니다.

 

진해도 지역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던 공화당 조직부장이 주도해서 지역의 힘있는 청년들만 규합해서 진해 청년지도자협의회를 창립했습니다. 지금도 나하고 같이 제8기 하기수련회에 참여했던 주준식, 허덕용 회장은 가끔 당시를 회상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남해 송정해수욕장에 인접한 송정초등학교를 빌려서 경상남도 청년지도자연합회 하기수련회를 진행했습니다. 하기수련회는 청지회 아카데미(Academy) 과정이라고 해서 지정한 과제로 분임토의를 해서 발표도 하고 하던 기억이 납니다. 청지회 정회원이 되려면 이 아카데미 과정을 수료 해야 정회원으로 인정을 했지요. 하기수련회 장소를 초등학교에서 개최하는 문제부터 잠자리에 필요한 침낭과 야전침대를 사천 공군부대에서 빌리는 문제까지 공화당 조직부장이 전화 한 통화만 하면 모두가 해결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가끔 술이 한 잔되면 허덕용 회장이 하는 이야기가 퍽 재미 있습니다. 모두가 바쁘게 텐트를 치고 교실에 강의실 준비도하는 과정에 누군가 높은 책상에 올라가서 형광등을 갈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어이 그거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하라" 고 하며 잔소리를 하고 보니 그 사람이 바로 남해군수더라는 이야기를 종종합니다. 군수가 와서 청년단체의 하기수련회장소 형광등을 갈아 주던 시절의 이야기 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이해하기가 어려운 이야기가 되고 웃기는 것 같지만 그 때는 그랬습니다. 막강한 민주공화당이 스폰서가 되어 조직하는 청년단체라 전국에서 내노라 하는 청년들이 구름같이 몰려들던 단체가 바로 청년지도자협의회였습니다. 각 지역협의회와 시, 도연협회가 조직되고 중앙회를 조직하는 단계였습니다. 청년지도자협의회 중앙회장출신은 국회의원을 보장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경쟁도 치열했습니다.

 

 

 

나는 내가 세상을 살면서 사람들이 상황에 따라서 어떻게 마음이 변하는지 직접 체험한 1979년을 잊어버리지 못할지 모릅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弑害)되자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전국의 청년지도자협의회가 술렁이고 있었습니다. 어느 한 순간에 그렇게 막강하던 조직들이 일시에 와해되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단체는 내가 아는 한 진해와 사천청년지도자 협의회 뿐입니다.

 

물론 진해 청년지도자협의회는 지금 정치와 어떤 연관도 없는 사단법인으로 독립해서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있는 건실한 청년봉사단체입니다.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 마다 사천 청년지도자협의회와 진해 청년지도자협의회는 서로 교류하면서 경상남도 청년지도자 연합회의 명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나는 나의 청년시절을 함께 했던 진해 청년지도자협의회에 각별한 관심과 애정이 아직도 고스란이 남아 있습니다.

 

 

이번 신년인사회에도 내가 진해 청년지도자협의회에 입회할 당시 제2대 회장을 역임한 안태희 회장님도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후배들이 사무실에서 떡국을 끌이고 닭백숙을 준비하고 과매기까지 준비를 했군요. 같은 지역의 청년봉사단체인 진해JC와 진해 청년지도자협의회가 대비되는 제미있는 사연도 있습니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진해 청년지도자협의회 회원들 대부분은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회원입니다. 그러나 진해 JC 회원들은 선대부터 부유한 집안의 사람들이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도 참 재미가 있습니다.

 

나는 내가 청년이던 시절에 진해 청년지도자협의회에 특별하게 제안했던 일을 지금도 실행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30여년 전에 내가 제안했던 일이 지금은 [TED 컨퍼런스]라는 내용으로 현실화 되고 있습니다. 나는 이와 같은 현실에 매우 흥미를 느끼면서 이 포스팅의 내용이 점점 길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30여년 전에 진해청년지도자협의회에 제안했던 내용은 이렇 습니다.

 

진해 청년지도자 협의회의 5~60여명의 회원들은 각자 자기가 일하는 분야에는 전문가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다면 매월 회원들이 순번제로 자기가 자신있는 자기분야 전문지식을 회원들에게 강연을 하자는 것 입니다. 결국은 회원 전체의 능력과 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시스템이 구축됩니다. 한 단체의 회원들 전체의 지식과 능력을 서로 공유하는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명실상부하게 우리는 지역청년지도자가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청년지식포럼"을 진해청년지도자협의회에 제안한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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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울사람들이 부러운 이유>      http://blog.daum.net/iidel/16078492

<클레이 셔키교수 강의 번역문 정리>  http://blog.daum.net/iidel/16078495

 

사실은 나 자신이 지역사회에서 청년지도자라는 이름에 부끄러움이 없는가 하는 자문자답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입니다. 지금은 비록 내가 지역청년지도자라고 나서기는 부끄럽지만 회원들이 서로 도와 가며 지식과 능력을 공유하게 된다면 언젠가 나는 지역 청년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박정희의 향수가 느껴지는 그림자같은 진해 청년지도자협의회 행사에 참석하면 늘 내가 꿈꾸던 "청년지식공유포럼"이 생각 납니다. 나는 후배들이 [TED 컨퍼런스]와 같은 미완의 [진해청년지식공유포럼]을 꼭 완성했으면 좋겠습니다. 진해청지회 신년인사회에서 먹은 떡국, 과매기, 닭백숙 모두가 정말 맛이 있었습니다.

 

TED 컨퍼런스 홈페이지 주소: http://www.ted.com/

TED컨퍼런스는 지금 TEDx 라는 라이센스로 한국어로 진행하는 70여개의 지역모임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TEDx서울 http://www.tedxseoul.com    TEDx 이태원 http://www.tedxitaewon.org/  

TEDx대덕밸리 www.tedxdv.org           TEDxEwha  www.tedxewh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