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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이야기/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협동조합은 떡 자르기다.

by 장복산1 2013. 6. 24.

<아래 글은 내가 오늘 조합원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나도 솔직히 내 혼자 개골개골 거리며 여기에 이런 글 쓰고 싶지 않습니다. 글 쓰는 일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정말 간절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베비라 협동조합은 전국에서 베비라 전문점을 운영하는 40여개가 넘는 가정의 생계문제가 달린 간절하고 절박한 문제라는 생각들이 나에게 그 어떤 마음의 여유나 공간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서울시에서 지원하고 사단법인 한국협동조합연구소가 주관하는 "서울시 일반 협동조합 임직원 역량강화 교육 2기" 교육이 지난 금요일 부터 2박 3일간 있었습니다. 금요일 저녁에는 불광역 부근에 있는 서울특별시 사회적 경제지원센터에서 밤 10시까지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하철 타고 거여동 사무실에 가서 차를 몰고 수원가니 밤 12시가 넘더군요. 새벽에 기상해서 출발했지만 지하철타고 도봉산역까지 가니 10시가 넘어 오프닝 행사에는 지각하고 말았습니다.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은 1박2일로 도봉산역 부근에 있는 도봉숲속마을에서 또 밤 10시가 넘도록 강행군으로 진행되는 협동조합 교육을 받았습니다. 지하철 도봉산역에 내려서 도봉숲속마을을 찾아 가는 길에 배낭메고 밀려드는 사람들의 무리를 해집고 가다보니 오늘이 주말인 토요일이라는 사실이 생각납니다. 사실 나는 요즘 주말이 언제인지 지금이 올해의 반을 지나는 6월달이 맞는지 흐르는 세월이나 계절감각마저 잊어버릴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내가 처음 경험하는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일들로 정말 정신 없이 하루가 바쁘게 살아 가고 있습니다.

 

 

 

나도 한 동안은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한 참 골프에 취미가 붙어서 싱글핸디에 도전할 때는 집안 일도 팽개치고 마누라까지 잊어버릴 정도로 주말을 기다리며 주말골프를 즐기던 시절이 갑자기 생각나며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흐릅니다. 도봉숲속마을은 도봉산을 오르며 시끌벅쩍한 사람들의 군상을 뒤로하고 가볍게 오를 수 있는 나즈막하고 조용한 언덕 길을 따라 갑니다. 

 

 

 

서울 도심에 이런 공간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어느 조합원이 베비라 협동조합도 1박2일정도로 일정을 잡아 협동조합을 이해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워크샵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올렸던 댓글 생각이 납니다. 멀리 갈 필요가 없이 도봉숲속마을이 워크샵 장소로는 딱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위기에 취하고 말았습니다. 시설차체도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간결하고 깨끗하게 꾸며진 공간들이 워크샵이나 세미나를 위한 공익적 시설들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 느낌대로 도봉숲속마을은 비영리재단인 송석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교육시설이라고 합니다.

 

 

 

 

교육은 그간 내가 막연하게 머리속으로 그리고 상상하던 협동조합에 대한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었습니다. 협동조합에 대한 자신의 막연한 생각이나 의지가 이제는 교육을 통해 확신을 넘어 실천하고 행동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밤이 깊도록 강행군으로 진행되는 교육의 피로감도 잊어 버렸습니다. 하루 교육을 마치고 도봉산 입구에 있는 막걸리집에서 이어진 뒷풀이 행사도 왁자지껄 합니다.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떠나버린 등산객들의 허전한 빈자리가 적막하게 느껴지는 밤하늘 솦속에는 협동조합에 대한 기대에 부푼 톤 높은 목소리들이 시끌벅적거리며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힘을 한 쪽으로 모아 서로 협동하고 목표가 같은 가치를 창조하도록 하는 협동조합이라는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예상했던 일 입니다. 그래도 한국협동조합연구소 강민수 사무국장의 강의에서 "협동조합은 떡 자르기"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고 떡을 자르고 나누는 지혜를 터득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나도 베비라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은 조합원들의 작은 힘이나 생각들을 우리라는 집단으로 귀속시키는 일이라고 생각 합니다. 나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 사고로 세상을 살아가기 마련이고 욕심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욕심이 없다면 세상은 변화하고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욕심은 작은 힘들을 모아 더 큰 힘을 만들 수 있는 협동이라는 더 큰 가치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강민수 사무국장의 떡자르기 이론은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하고 너무 쉽게 들립니다. 그러나 미련한 인간들은 이렇게 쉽고 간단한 방법조차 제대로 찾지 못하고 서로 험담하고 비난하며 세상을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절친한 친구 두 명이서 동업해서 마련한 떡입니다. 이 떡을 아주 공평하게 2등분해서 나누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아무리 정확하게 2등분을 해서 나누었다고 하지만 저녁에 가만히 누어서 생각하면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친구놈이 가지고 간 떡이 더 크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울로 달아서 나누려니 저울을 살 돈이 필요 합니다. 이웃집에 가서 저울을 빌리자니 누가 가서 빌리는 것이 공평할지 모릅니다. 강국장이 제안하는 방법입니다. 우선 둘이서 가위 바위 보를 합니다. 이긴사람이 떡을 자르고 진사람에게 먼저 선택할 권리를 줍니다. 이긴놈은 가장 공평하게 떡을 2등분해서 자르려고 할 것이고 진놈은 당연히 지가 더 큰쪽을 가지고 가려고 선택할 것입니다. 가위 바위 보에서 이긴 놈이 나중에 선택을 해도 자기가 자른 것은 공평하게 2등분을 했기 때문에 불평할 이유가 없어 집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려면 자신의 의무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협동조합에서 무임승차를 허락하게 되면 협동조합은 망하게 되어 있다는 강국장의 이야기에도 나는 적극 동의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빈익빈 부익부가 조장되는 경제적 부의 편중이 자본주의의 제도적 한계라면 무임승차로 공평한 분배에 참여하려는 신이내린 선물인 인간의 욕심은 같이 벌어서 같이 먹고살자는 공산주의 이론의 극단적 한계인지 모릅니다.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한계를 벗어나고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하려는 노력과 고육지책으로 도입되는 제도입니다. 같이 벌어서 같이 먹고 살자는 공산주의는 협동농장을 운영해서 공동으로 생산해서 공동으로 분배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협동조합도 공동구매 공동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협업화 사업입니다. 조합원 모두가 공동구매에 힘을 합하고 공동판매에도 힘을 합한 다음에 과실을 공평하게 나누고 분배해야 합니다. 협동조합에서 절대 무임승차가 허용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공평하게 나누고 분배하는 선결조건은 공평하게 기여하는 일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협동조합의 올바른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경제구조를 지탱하는 주식회사의 설립요건이나 권한행사와는 전혀 다른 제도와 형식을 가지고 출발하는 협동조합의 근본적인 제도와 형식을 먼저 이해하고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식회사는 1주1표로 의결권을 행사하지만 협동조합은 모든 의사결정과 의결권을 조합원들의 1인1표로 의결하고 행사 합니다.

 

주식회사는 투자자의 투자금액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고 주식수를 분배의 기준으로 삼지만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조합에 대한 기여도를 분배의 중심에 두고 잉여금의 50% 이상을 기여도에 따라 분배하도록 분배의 하한선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투자에 대한 분배는 10% 이하로 분배하도록 상한선을 규정하고 법률로 제한하는 협동조합 기본법의 입법취지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나는 베비라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등기하는 과정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나에게 어떤 기대를 한다는 것은 나의 능력 밖에 있는 일들 입니다. 조합원 누구라도 이 일을 감당할 방법이나 능력이 있으면 그 힘이나 능력을 베비라 협동조합에 보태주기를 희망합니다. 나그네의 외투를 바람으로 벗기건 햇살로 벗기건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내가 바라는 간절함은 어떤 수단과 방법이라도 가리지 않고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일입니다.

 

어떤 일이건 일을 성사시키는 과정과 방법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나에게 간절함을 넘은 절박함으로 다가 온 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운명이라는 생각때문 입니다. 누구라도 베비라 전문점에서 선입금을 받아 드리지 않고 제품을 생산할 방법이 있으면 그 방법을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에 베비라 본사에서 주문회를 하면서 담당들이 전문점별로 주문하는 목표금액이 기준에 미달하면 다시 주문하라고 해서 두번 세번 주문서를 지우고 또 지우면서 다시 주문서를 작성하도록 하던 이유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도 카페에 선입금하라는 글을 게시하는 일이 제일 쓰기 어려운 글입니다. 나도 베비라 협동조합에 경리사원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나도 베비라 협동조합에 생산부 직원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베비라 협동조합에 디자인실 직원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베비라 협동조합에 물류부직원 단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내가 택배박스 들고 땀흘리며 쩔쩔매지 않아도 되니까 정말 좋겠습니다. 그리고 영업부 직원도 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나보고 욕심이 많다고 흉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베비라 전문점에서 최소한 울분을 참지 못하고 불평불만하지 않게 협동조합을 운영하려면 그 정도 인원은 있어야 하고 그 정도 자금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뛰어 넘는 포용력 있고 능력이 있는 조합원이 있었으면 나도 참 좋겠습니다.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더 이상 어떤 기대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6월 24일

베비라 협동조합  이사장   이춘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