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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이야기/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내가 "추석" 문구를 빼지 못하는 사연

by 장복산1 2013. 9. 6.

나는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면서 내가 미처 시대의 흐름을 따라 가지 못하는 조급증 때문에 안절부절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시대에 뒤지지 않으려고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게임도하고 페이스북도 합니다.  국산품 애용이 애국이라는 생각으로 겔럭시 S-2를 구입하고 아이폰을 들고 다니는 젊은 사람들에게 한발 뒤진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벌쩡한 S-2를 두고 공짜로 주겠다는 S-3를 바꾸지 못하고 있는 답답한 사람입니다.

 

예전에는 왠만한 제품들은 수리하고 고쳐 쓰다가 수리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아야 새로운 신제품을 구입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멀쩡한 제품도 버리고 신제품을 사야 시대에 뒤지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아렇게 제품의 Lifc cycle이 짧아진 만큼이나 세상도 빨리 변화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아내가 운영하고 있는 베비라 전문점 체인본부인 본사가 부도나고 말았습니다. 유통구조가 바뀌면서 대형유통들이 지역상권을 잠식하고 골목상권까지 침투하면서 개인 사업자들은 설 자리를 점점 잃어 버리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재래시장을 살린다고 예산을 퍼 부어 가면서 지원하고 있지만 재래시장 상인들이 제품의 Lifc cycle이 변화하는 만큼이나 빠르게 생각을 바꾸고 변화한다는 기대는 어림없는 일 입니다. 작년말에는 협동조합 기본법이 발효되었습니다. 이제는 5인 이상이면 누구나 협업화사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협동조합 기본법은 다섯명 이상이 모이면 큰 제약을 받지 않고 법인을 설립하고 협업화사업이 가능합니다. 나는 이와 같은 협동조합 기본법을 근거로 전국 베비라 전문점과 생산업체들을 설득해서 베비라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문제를 시작했습니다. 부도난 회사를 전문점과 생산업체들이 다시 살려보자는 취지였습니다. 

 

문제는 대형유통들이 벌리는 치열한 경쟁속에 로드샵들이 살아 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문제였습니다. 새로운 시대적 흐름을 타고 혜성같이 나타난 온라인이나 대형유통들과 당당하게 경쟁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고 터득해야 합니다. 틈세시장을 노리는 특별한 전략을 구사하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도 그렇게 쉽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여유가 없습니다. 어떤 방법이건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바꾸고 변화 해야 할지 변화하는 세대의 흐름을 따라 갈 구체적인 방법은 쉽게 떠 오르지 않습니다.

 

우선 베비라 협동조합 창립총회를 한 매월 5일을 협동조합의 날로 정했습니다. 전국 베비라 전문점들은 매월 5일은 서울로 모이기로 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은 조합원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베비라 협동조합 운영에 관한 문제를 서로 토론하고 조합원들 스스로 새로운 변화에 도전하는 방법을 찾아 보자는 결의를 했습니다. 우선 체인사업의 문제점을 찾아 내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먼저 체인점 사업자인 "갑"은 왕이고 대리점 사업자인 "을"은 종같은 구조적 모순을 주종의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바꾸는 문제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 만인은 1인을 위해서 1인은 만인을 위해서"라는 평등을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베비라 협동조합을 설립한 이후 철저하게 조합원들이 주인이 되는 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세한 문제까지 조합에서 운영하는 카페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온 오프라인에서 협의하고 집행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일제시대에 일본사람들이 우리를 통치하기 위해서 소소한 지명까지 일본식으로 바꾸었다고 하더니 체인사업자들은 독립적 사업체의 대표인 전문점 대표들을 한결같이 사장님 아래 종속된 느낌을 주는 것 같은 "점주"라고 호칭합니다. 앞을 봐도 사장님, 뒤를 봐도 사장님 뿐이라는 흔한 사장님 호칭조차 거부합니다. 나는 우선 전문점대표 호칭이라도 조합원이나 사장님으로 바꾸자는 제안을 합니다. 그러나 이번에 가을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진행하는 광고 마케팅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조합원들 의견에 조합 이사장인 내가 반기를 들어야 할 사정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산하는 제품을 "우리 아기를 키우는 정성으로!!" 최상의 제품을 생산해서 "가격의 거품을 뺀 착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을 조합의 설립목표로 설정했습니다. 치열한 경쟁에서 우리가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우리의 진심을 고객들로부터 인정받는 일이라는 생각까지는 조합원들이 공유했습니다. 가장 품질좋은 제품을 생산해서 가장 싼 가격으로 판매하는 전략은 가장 쉽고 경쟁력있는 마케팅 전략이지만 진심과 의지가 없이는 실현이 불가능한 영업전략이라는 문제도 있습니다. 

 

조합원들의 의지를 모아 경쟁업체들이 가장 하기 싫은 부분이나 경쟁업체들이 할 수 없는 문제들을 찾아내는 것이 틈세시장을 찾는 길 입니다. 마치 고난의 행군을 하는 것 같은 심정이 아니라면 틈세시장은 없습니다. 누구도 생각하기 어려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고 실천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시각과 판단으로 시장을 바라보는 조합원들의 생각을 같은 방향과 목표로 결집한다는 일이 그렇게 녹녹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정말 현수막 문구 하나도 통일하기 어려운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베비라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새로운 신제품을 출시하기까지 어렵고 힘든 과정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신제품을 출시하고 고객의 평가가 필요한 시점까지 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기를 키우는 정성으로!!" "가격의 거품을 뺀 착한 가격"으로 고객의 평가를 받아 보겠다는 우리의 의지나 생각을 널리 알리고 홍보할 마땅한 방법을 찾는 일이 쉽지않습니다. 궁여지책으로 전국의 각 전문점 점포마다 베비라가 협동조합으로 다시 출발하며 신제품을 출시한다는 내용을 알리는 현수막이라도 제작해 점포에 개시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사소할 것 같은 "추석"이라는 문구 하나에서 조합원들과 이사장의 엄청난 생각의 차이를 느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의 기본은 1인1표로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모든 조합원들이 현수막에서 "추석"이라는 문구를 빼자고 하면 빼야합니다. 그러나 내가 "추석"이라는 문구를 빼지 못하는 사연이 있습니다. 조합원들이 현수막에서 "추석"이라는 문구를 빼자는 진짜의미는 한 번 제작한 현수막을 두고두고 가개앞에 걸어두겠다는 경제적 논리를 변화에 우선해서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현수막을 제작하는 경비와 현수막을 게시하는 수고가 포함된 경제적 판단기준이 개입되면서 변화를 거부하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나는 변화가 필요한 조합원들이 한결같이 요구하는 "추석"이라는 문구를 빼자는 의견을 어쩌면 수용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제 베비라협동조합 9월 정기모임 토론과정에서도 현수막에 "추석"이라는 문구를 빼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제법 긴 시간을 허비하며 설명하고 토론했습니다.

 

우리는 수십만원 하는 멀쩡한 스마트폰도 마구 버리고 새로운 모델이 출시되면 줄을 서서 구매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베비라 협동조합은 최상의 제품을 최저가격으로 판매하겠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조합에서 단체로 제작하면 단돈 2만원이면 제작이 가능한 현수막조차 한 달에 한번 새로운 문구로 갈아 달지 못하겠다는 것은 변화를 거부하는 것 입니다. 한번 제작한 현수막 문구를 추석이 지나도 두고두고 걸어 두겠다는 생각이나 판단은 결코 경제적 논리만으로 걸론 내야할 문제가 아닙니다.

 

TV광고를 하는 기업들은 단20초 텔레비전 광고를 위한 CF촬영에 수십억원도 투자한다고 합니다. 한 번제작하는 경비가 2만원하는 현수막 까지도 한 달에 한 번 새로운 문구로 바꾸어 게시하지 못하면서 변화를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버릴 것을 적당한 시기에 버리지 못하고 아끼다 보면 결국은 쓰레기로 변하고 쓰레기 처리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아낄 것은 아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내가 조합원들의 줄기찬 요구에도 현수막에서 "추석" 이라는 문구를 빼지 못하는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