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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이야기/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안되는 이유만 찾았던 하루

by 장복산1 2015. 12. 20.

사람이 무엇을 배운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냥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것을 보고 듣지 못하던 것을 들어서 기억속에 저장해서 익히는 것이 배움이 아닐까? 처음 가는 길을 두번 가고 세번 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 길의 모습을 보고 느끼는 정보들을 기억속에 저장합니다. 매일 다니는 길이라면 특별하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누구라도 길을 찾아갈 수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말을 배우고 글을 배우기도 합니다. 운전도 배우고 컴퓨터도 배웁니다. 한 번 듣고 한 번 보는 일을 반복하면서 배우게 됩니다.

 

내가 늦었다고 생각하는 시점이 가장 빠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서울대학교 협동조합경영전문가과정에 입학을 한 이유가 배움이란 항상 미지에 대한 도전이고 도전을 극복하며 이겨내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일 것 입니다. 나는 세상을 70년 가까이 살았지만 아직도 내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다는생각을 합니다. 요즘은 가슴이 두근거리며 설레기도 합니다. 

 

두 번쩨 강의가 있던 날은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아침밥을 먹을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김밥 두줄을 사서 들고 두 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갔습니다. 지성을 향한 배움의 상징같은 육중한 서울대 정문의 조형물을 지나면서 사람이 무엇을 배운다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속에 길을 걸으며 이미 기억속에 잠들었던 내 삶의 궤적을 따라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입니다. 나는 원주 육민관중학교를 다니다가 원주공업기술학교라는 기술학교로 전학을 했지요. 내가 다니던 기술학교에는 사진과, 시계과, 라디오과, 이발과, 양제과, 미용과, 도장과, 목공과가 있었습니다. 중학교 정규과정을 공부하면서 기술교육을 시켜서 기능공으로 취업을 알선하는 기술학교였습니다.

 

지금생각하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기술교육 과목들이 있었습니다. 시계과는 하루에 한 번씩 테엽을 감아 준 동력으로 시간을 맞추던 시계를 수리하는 기술을 배우는 시계수리공 교육이었습니다. 라디오과도 진공관식 라디오에서 트렌지스터 라디오로 바뀌던 시기에 라디오를 수리하는 수리공 교육입니다. 나는 사진과를 선택해서 사진을 배웠습니다. 사진과를 담당한 임성배 선생님은 항상 빨간색 표지의 일본책에서 사진현상약 처방전을 보고 칠판으로 옮겨적고 우리에게 설명하시곤 했습니다. 이제는 추억속에서나 보는 장면이군요.

 

나는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도장과 학생들이 나무로 된 틀에 둥근 도장모양을 고정하고 조각칼로 도장을 세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도장의 글을 세기려는 면을 곱게 갈고 연필로 이름을 거꾸로 쓴 다음에 조각칼로 글자를 따라 파내며 글을 세기고 있더군요.

 

나는 그 날 집에 와서 지우게에 글씨를 거꾸로 쓰고 면도칼로 글자를 파 보았습니다. 그리고 도장을 찍어보니 글자가 찍히더군요. 순간 도장파는 것이 별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경험때문이었는지 나는 지금까지 쉬지 않고 항상 무모하리 만치 새로움에 도전하며 내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나는 협동조합의 진정한 의미도 모르면서 협동조합이라는 또 다른 영역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미련할 정도로 무모한 도전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가 도전한 일들이 아직까지는 특별하게 실폐의 쓴맛을 경험하지 못하고 도전을 이겨내는 성취감에 도취되어 세상을 살았는지 모릅니다. 이제는 나도 스스로 살아 온 삶을 돌아보며 인생을 정리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는 수강생 중에 최고령자라는 타이틀을 걸머지고 다시 서울대학교 협동조합경영전문가과정에 입학했습니다. 

 

정확하게 42년 전에 나는 카메라도 없이 진해역 옆에서 창조사라는 DP점을 개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어떻게 그 때는 그런 용기가 있었는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1973년 9월 16일 진해에서 카메라도 없이 사진관을 차리고 매월 아기들 성장과정을 촬영해 기록해주는 "카필모임"이라는 이상한 영업조직을 만들며 나의 무모한 마케팅공부는 시작되었습니다. "진해 Amateur 사진동우회"라는 써클을 조직해서 사진촬영기술을 강의하며 회원들에게 카메라를 판매하고 필름을 판매하던 나의 무대보식 영업방식이 이제와서 알고보니 고도의 마케팅전략이었습니다. 마케팅에 대한 기본개념이나 이론도 없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니 된다는 성취감에 불타서 더욱 집중하고 열심히 했습니다.   

 

              (관련글 가기 골목분식을 29년 지키는 칼국수 이야기 --> http://blog.daum.net/iidel/16078558 )

나는 사진관운영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아서 어린아이들 사진을 전문으로 촬영하다 보니 어린아이들에게 필요한 제품들을 판매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81년 유통업에 특별한 경험이나 지식도 없이 무작정 진해유아백화점을 개업하고 도전합니다. 무모한 도전인 유아백화점 개업은 목마른 사람이 우물파는 심정으로 다시 생소한 고객관리시스템을 공부하며 열심히 DM발송용 봉투에 볼펜으로 주소를 쓰는 작업을 하다가 만난 것이 나에게는 정말 생소한 컴퓨터였습니다. 고객들 주소를 봉투에 출력하는 문제를 고민하다가 컴퓨터를 만나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는 사람이 1992년 다시 삼성컴퓨터대리점을 개업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퍼서널컴퓨터가 처음 생산되면서 컴튜터를 다루지도 못하던 사람들에게 컴퓨터를 판매하기 위해서 나는 컴퓨터매장에 무료로 컴퓨터교육장을 운영하며 컴퓨터 사용방법을 교육해서 컴퓨터를 팔았습니다. 항상 그러했던 것 같이 이번에도 나는 컴퓨터에 대한 어떤 지식이나 상식도 없는 무지의 상태에서 무식하게 도전했고 컴퓨터를 배우고 익혀가며 컴퓨터대리점을 그래도 성공적으로 운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관련글 가기 해군대위 안철수로 남아있는 기억들 --> http://blog.daum.net/iidel/16078588 )

 

 

오전 수업은 김성오 이사장의 협동조합원론에 대한 강의가 진행되고 오후에는 박기완 교수의 마케팅-1이라는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처음에는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정리되지 못하고 어수선 하던 생각들이 어느정도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그랬던 것 같이 나는 사실 이번에도 협동조합에 대한 사전지식이나 개념도 모르고 목마른 사람이 우물파는 심정으로 협동조합을 설립했습니다.

 

프렌차이즈방식 영업을 하던 본사가 파산하자 대리점을 하던 전문점 사장님들은 당장 먹고사는 문제인 생계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제품공급문제부터 상거래채무나 대리점담보해지 문제를 어느 개인이 혼자서 해결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마침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공포되었다는 소식이 대리점들의 단합과 단결의 고리가 되었습니다. 나는 이번에도 작정없이 베비라협동조합 설립을 추진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협동조합을 공부하고 발품을 팔며 강의장들을 찾았습니다. 조합설립 3년을 지나는 시점에 돌아보니 정리된 이론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짐작하고 생각하던 협동조합의 이론은 지금까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가장 이상적인 경제조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자본주의의 폐단으로 생각하던 극심한 빈부격차문제의 해답을 협동조합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선 조직의 경제적의사결정권을 1인1표제로 행사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나는 대권가도에서 정치인들이 줄기차게 주장하던 경제민주화의 해답은 협동조합에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관련글 가기 경제민주화의 대안은 협동조합이다. --> http://blog.daum.net/iidel/16078671)

 

오전 수업은 협동조합원론에 대한 강의였습니다. 강의를 들이며 그간 내가 정리하지 못하고 어수선하던 생각들을 어느정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자본주의사회의 기본 경쟁이고 경쟁의 상징인 시장경제는 불완전하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20%에 불과하고 실페하는 80%는 사회적 손실이다. 시장에서 정부역할의 한계와 협동조합 발생의 메카니즘은 국가가 사회적경제에 개입하면서 80%의 사회적 손실을 막을 수 있다. 결국 정부의 복지예산을 그 만큼 절감하는 것 이다. 협동조합은 영국에서 자본주의 탄생과 더불어 원시적 축적으로 서민과 노동자들이 하루 18시간의 살인적 노동과 사회에 만연한 유아노동으로 동물적 억압과 착취를 당하며 지옥에서 피어난 연꽃이었다."

 

로치데일 소비조합의 탄생은 가난한 노동자 주부들의 생필품조달을 위해서 28명의 노동자가 모여서 1파운드씩 출자하여 조그만 구멍가게를 만들어 제값내고 제대로된 물건을 구입하게 되면서 20여년이 니자지 않아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고 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지금은 안되는 이유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때는 그렜겠지 그러나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280명이 280파운드를 출자해서 구멍가개를 차려도 거대한 시장경제의 경쟁에서 살아 남을 방법이 없다는 문제점이 있지" 나는 이미 협동조합이 안되는 이유를 찾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발전하고 진화하는 만큼 자본가들은 더 영악하게 변해버렸습니다.

 

베비라협동조합도 조합을 설립하고 3년이 지나자 조합원들도 협동조합의 개념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조합을 중심으로 뭉치고 단합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냉혹한 가격경쟁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영악한 거대자본들이 다량생산으로 무장하는 가격경쟁을 단순한 협동이나 단합이라는 구호만으로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한계를 나는 이미 체득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서울대학교 학생식당도 생활협동조합이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배식시스템을 전산화하고 메뉴도 단순화 했더군요. 식단도 깔끔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가격경쟁력이 있는지 하는 문제는 별론으로 생각할 여지가 있었습니다.

 

오후에 진행된 마케팅강의도 나는 강의내용에서 이미 안되는 이유만 찾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이제는 마케팅도 고객만족을 넘어 고객감동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설명에는 나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나 박기완 교수님이 경험한 진실의순간(moment of truth)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나는 이미 안되는 이유를 찾아서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승선했던 어느 호화여객선 선실바닥에 물이 흘러 들어 온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입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나치게 고객을 왕으로 모시는 장면입니다. 고객은 왕이라는 사실에 동의 합니다. 그리고 마케팅의 기본은 고객을 왕같이 모셔야 한다는 부분까지도 나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왕은 왕다운 행동을 할 때 왕의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나의 고정관념이 더 이상 강의내용에 동의하는 문제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결국 나는 쉬는 시간에 담당교수를 찾아가 질문을 합니다. 친절을 볼모로 역이용하려는 진상고객들은 어쩌지요?

 

    

수업을 마치고 수강생들이 같이 저녁을 먹으며 조별로 자기소개를 하는 회식시간이 있었습니다. 회식은 학교구내식당 2층에 있는 소담마루에서 저녁을 먹으며 했습니다. 내가 속한 제6조에는 수강생들 중에 제일 나이가 어린 최연소자로 대학독립언론협동조합 정상석 이사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나이가 많은 최고령자인 내가 함께 협동과 화합을 다짐하며 6조가 자리를 같이했습니다. 회식을 마무리하는 과정에는 연장자인 나에게 건배사를 할 기회를 배려해 주어 고마운 생각으로 건배를 제안햤습니다. 나는 20년 후에는 사회적경제조직인 협동조합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오기를 기원하는 건배를 제안했습니다. 집으로 돌아 오면서 오늘 매사에 긍정적 사고보다 안되는 이유만 찾았던 하루에 대한 후회가 마구 밀려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