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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이야기/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1박 2일 강화도 청춘나들이

by 장복산1 2017. 11. 3.

지난주에는 1박 2일 일정으로 강화도로 청춘나들이를 하고 왔습니다. 경남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같이 공부를 하던 동기생들이 마산에서 버스를 대절해 올라 온다고 해서 나는 전철을 타고 천안까지 마중을 갔습니다.


천안 버스터미널 인근에 있는 순남시레기라는 식당에서 만나 같이 점심을 먹고 버스에 동승해서 강화도로 들어 가기로했습니다. 그간 내가 서울생활을 하면서 동기회모임에 참석하기가 어려워 미안한 마음으로 천안까지 마중을 가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반가운 얼굴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이런 저런 인연을 맺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같은 시기에 동문수학 (同門受學)하던 인연의 끈은 이토록 질기고 긴 인연으로 이어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몇년 전에는 군생활을 같이 하던 동기생들과 강화도를 여행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맛보았던 밴댕이회 맛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강화도와 나는 조금 특별한 인연이있는 모양입니다.



얼마 전에는 남한산성이라는 영화를 보고 남한산성을 올라갔던 일이 있습니다. 남한산성과 강화도도 아주 특별한 관계가 있는 섬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강화도는 고려시대 몽고 항쟁부터 조선시대 병자호란과 구한말 서구 열강의 외침에 고군분투하던 현장이 섬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원래 강화도를 강 아래 아름다운 고을’이라는 뜻으로 강화(江華)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병자호란 때 강화도로 피신하려던 인조는 적의 진군속도에 밀려 숭례문 대신 시체를 운반하는 문인 광희문을 통해 남한산성으로 들어 갔고, 남한산성에서 47일을 버티다 강화도 함락 소식과 함께 남한산성의 농성전도 끝내고 잠실 한강변 삼전도로 나가서 청의 황제 홍타이지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레(三排九叩頭禮)를 행하기 까지 하고 군신의 맹세를 했다고 합니다. 남한산성은 지리적으로 적을 방어하기는 좋았을지 몰라도 긴 기간을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는 지형적 조건이었습니다. 
관련글 가기-->영화 남한산성을 보고 남한산성을 오르다. |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http://blog.daum.net/iidel/16078849    







강화도 동막해변의 저녁노을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70줄을 넘기는 동기생들을 인솔하는 동기회 정성곤회장이 "청춘나들이"라는 현수막을 준비한 것으로 보아 이제는 청춘이 그리운 모양입니다. 언제나 자신은 청춘인즐 알고 세상을 살는지 모르지만 세월이 가면 나이를 먹고 늙는 다는 자연의 이치까지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빨리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부쩍 지팡이가 필요하지 않을 때 부지런히 구경도 하고 여행도 다녀야 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저녁에는 강화도에서나 맛볼 수 있다는 꽃계탕에 소주가 한 순배 돌면서 모두가 이야기 속으로 빠저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면서 맺는 여러 인연들 중에서 그래도 군대생활을 같이 하던 동기생들이나 동문수학하던 동기생들이 그래도 오랜 인연을 이어가기 마련이고 서로가 허물없이 이런 저런 소통들을 하기마련입니다. 제법 자주 만나는 편이지만 그래도 만나면 서로 할 이야기들이 그렇게 많은 모양입니다.


시끌벅적하게 강화도 팬션에서 하루밤을 지내고 우리는 석모도로 향했습니다.


석모도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배를 타고 건너야 하는 강화도의 서편 바다위에 길게 붙어있는 작은 섬이었습니다. 



                               <새로 개통한 석모대교라고 합니다.>                   -사진출처 / 인터넷자료사진-





그러나 지난 6월 28일 석모대교가 개통한 이후 추석 연휴까지 약 108만대의 통행량을 기록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납니다. 나는 석모도에 우리 나라 3대 관음영지(觀音靈地) 중의 한 곳이라고 하는 사찰인 보문사(普門寺)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지난번 강화도를 여행을 할 때는 강화도 마니산과 고려궁지 갑곶돈대를 관광했던 기억과 밴댕이회를 먹은 기억만 남아있습니다. 석모도와 보문사는 처음이었습니다.










보문사 입구는 차량과 사람들이 뒤엉켜서 마치 도시같이 붐비고 있었습니다. 여기가 섬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어버릴 지경이었습니다. 석모대교가 개통되고 일요일이라 그런 모양인지 모르겠습니다. 합천 해인사나 양산통도사보다도 사람들이 더 붐비는 것 같았습니다. 낙가산 중턱에 새겨진 마애관음입상 및 나한석굴로 상징 되는 보문사는 낙산사, 보리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 일컬어진다고 합니다. 아내가 같이 왔으면 좋아할 것 같다는생각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언제고 아내와 같이 다시 한 번 와야 하겠습니다.









관음사를 관광하고 우리 일행은 북한 땅이 바로 눈 앞에 보이는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로 올라 갔습니다. 지난번 여행때는 파주에 있는 통일전망대에 올라가서 북한 땅을 바라보며 분단된 조국의 경계에 서서 남이나 북이나 국민들의 한결같은 생각은 조국의 통일을 염원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치적 이념에 따라 인위적으로 갈라 놓은 경계를 사이에 두고 반세기가 넘도록 같은 동족끼리 총뿌리를 겨누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역사는 어떻게 기록할지 모르겠습니다. 제적봉에서도 모두 열심히 망원경으로 북녁땅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우리는 1박2일 동안 또 한 편의 드라마를 쓰며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내 평생에 통일이 되어 평양이나 백두산을 관광하고 금강산도 관광하는 시대가 올지 모르겠습니다.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숨을 쉬고 세상을 사는 동안 동기생들 모두가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강화도를 떠나기 전에 밴댕이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하려고 들렸던 강화도 풍물시장에도 사람들이 제법 분비며 장사가 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전통시장 건물이나 주차장 시설이 참 잘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내와 같이 다시 석모도 보문사를 관광하고 강화도 풍물시장에 들려서 밴댕이비빔밥도 함께 먹어야 하겠습니다. 나이가 70이 넘으면서 괜시리 마음이 조급해지는 느낌이 자주듭니다. 가끔은 좋은 것을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아내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