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카페지기를 하는 <진해사랑 시민모임 / http://cafe.daum.net/jinhaelovengo > 이라는
카페에는 중앙동민님이라는 특이한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회원이 있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무척 오래 전 일이지만 세상을 살면서 서로가 세상을 살아 가는 방법이 다르고
각자에게는 가족이라는 자기나름으로 지키는 자신의 울타리 때문인지 제법 긴 공백을 서로가 멀리서 바라 보고만 있었다.
한동안 무관심하게 세상을 잊어버리고 살던 나에게
어느날 진해 중앙시장 차양 막 공사라는 이상한 일이
주변에서 일어 나면서 나는 주위를 살피게 되었고
상식없는 진해시정에 항의하며, 원칙보다는 변칙에
익숙한 사회에 저항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시기에 그는 나를 다시 찾아 왔고 내 옆에 있었다.
그리고 그는 항상 말보다는 행동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내가 그를 필요로 할 때는 나와 함께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진해사랑 시민모임>이라는 카페를
운영하면서 의기투합(意氣投合) 중 이다.
그런 그가 전국족구연합회 부회장이라는 직책을 맏으며
바쁜일정을 소화한다고 요즘은 전국을 누비고 있다.
<토요일 의령에서 족구시합이 있는데 올래여.~> 하는
그의 메시지에 무심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만장대님에게
메시지를 중계하자 <감지..ㅋㅋㅋ> 라는 답변이 오면서
우리의 작당모의는 시작되었다.
요즘 만장내님이 새로 운전대를 잡은 체어맨 자동차로
봉화마을도 갔는데 오늘도 털털거리는 내 차 보다는
체어맨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다.
어떤 계획도 없이 그냥 의령가서 점심이나 한 그릇하고
돌아 오자는 생각으로 우리는 진해를 출발 했다.
산인에서 차가 좀 지체를 하는 바람에 의령공설운동장에
도착할 때는 이미 개회식이 끝나고 뒤편에 마련된 좌석의
중간에서서 무언가 열심히 이야기하는 그를 확인하고서
우리는 본부석에 앉아 물을 한잔 하고 있다.
우리는 중앙동민님의 안내로 자리에 합석해서 의령군수와
인사를 나누며 그들이 준비한 비빔밥이며 의령 망개떡과
토요애라는 상표의 의령수박을 나누고 있었다.
김채용 의령군수가 건내는 명함은 앞면과 뒷면이 온통
광고판이라는 느낌이다.
의령군 농산물 공동브랜드인 토요애라는 상표의 initial 이
의령군수의 명함 뒷면에 너무도 예쁜 초록색 바탕에 새겨
져서 지역을 사랑하는 의령군수의 지극한 마음을 대신한
그의 인격과 의령군을 같이 광고하는 광고판이 되었다.
<의령군수배 족구대회 안내 Pamphlet 과 의령군수 명함 사진이다.>
스스럼없이 우리와 어울려 비빔밥을 먹고 담소하는 그의 모습을보면서 진해시장의 얼굴이 괜시리 나의 뇌리에
갑작이 overlap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지금 진해시장과 시민들의 소통부재를 항의하며 진해시청 홈페이지 열린시장실의 <시장에게 바란다.>라는 코너를 공개
운영하라는 요청을 시장에게 청원하고 이제는 조례까지 개정해서라도 공개운영문제를 풀어보려는 노력으로 조례개정을 위한
진해시 의회에 조례개정청원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5월 27일에는 진해시청 대 회의실에서 제47회 군항제 및 군악의장페스티벌 행사를 평가하고 보고하는 행사가 있었다.
이재복 진해시장은 시민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는 과정에서 진해 군항제 행사에 대한 문제점을 분명하게 제시하며 개선방향도
분명한 소신을 가지고 답변하는 모습을 보았다.
평소에 내가 주위에서 다른사람들이 진해시장을 평가하고 전하는 정보들만 가지고 그렸던 진해시장의 모습이 어쩌면 잘못
그려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언젠가 그의 측근이 말하던 시민들과 끝장토론을 진행하더라도 충분히 자기의 생각이나 소신을 시민들에게 이해시키고 동의를
구해서 시민들의 박수와 지지를 받으며 시정을 펴 나갈 수 있을만한 자신에 찬 그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이었다.
어쩌면 소통의 부재에 의한 오해와 편견으로 그는 많은 진해시민들의 질타와 항의를 감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김채용 의령군수가 오늘 따라 더 돋보이며 존경스럽기까지 한 이유가 상대적피해의식에 대한 보상심리의 표현 같았다.
만장대님과 나는 기왕에 온 의령에서 <호암 이병철 선생>의 생가에 들려 돈잘버는 기(氣)라도 받자는 생각을 누가 먼저 했는지
모르지만 눈빛으로 통하며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차를 몰아 도착한 궁류면의 호암선생 생가는 그냥 우리가 어릴 때 늘 보아 오던 그런 시골집이었다.
지방문화제 해설사가 이야기하는 산세의 흐름과 좌청룡 우백호니 하는 설명들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 돌아 오며
우리는 호암선생이 과연 집터가 명당이라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가 돠었는지 그가 최고의 부를 축적하자 집터가 후대에
그렇게 해석되고 창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등의 이야기들을 하면서 남지로 해서 내서와 연결된 구불구불한 도로를 돌아
아주 느리고 여유있는 속도로 돌아 오고 있었다.
호암 선생님 생가에 들려서 돈버는 기(氣)를 받아 와서 그런지 오늘은 배도 고픈 줄 모르며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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