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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이야기/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얽히고 설킨 실타레도 풀면서 살아야 한다.~

by 장복산1 2009. 8. 16.

 

             <멘 왼쪽에 앉아서 웃으면서 바라보는 분이 주준식의원의 젊은시절의 모습이군여.~ㅎㅎㅎ>

 < 얼키고 설킨 실 타레도 풀면서 살아야 한다.> 

 

얼키고 살킨 실타레를 풀어서 쓰는 방법도 여러가지가 있다. 

차근차근하게 실의 끝을 찾이서 얼킨 부분을 조심스럽게 이리 빼고 저리 빼서 조금씩 보금씩 플어서 다른 실페에

감아두고 쓰는 방법이 있고, 또 한가지 방법은 무조건 아무데나 실을 무작정 잡아 당겨서 풀리는데 까지 풀어서 쓰고

또 쓰다가 안되는 부분은 둘둘 말아서 버리는 방법이다.

좀더 빠르고 손 쉬운 방법은 아예 처음부터 얼킨 실타레는 둘둘말아서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 한타레 사서 쓰는 방법이

어쩌면 제일 현명할지도 모른다.

 

후자의 경우는 얼킨 실타레를 푸는데 걸리는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방법이다.  

얼킨 실타레를 피곤하게 풀는데 들어가는 시간에 차라리 실 풀기를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벌어 아예 새 실을

사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사람이 피곤하지도 않다는 논리인 것이다. 

이와같이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나 요령도 다양하고 서로가 자기 나름으로 세상을 살기 마련이다.

내가 갑작이 실타레 타령을 하는 이유는 요즘 내가 하는 일들이 내가 생각해도 조금은 갑갑해서 하는 이야기다.

 

조금 전에도 나는 <시장에게 바란다 코너>에 무슨 데크로드가 썩어간다는 이야기나 하면서 목을 메는 모습에

<진해사랑 시민모임> 카페 회원들이 답답해 할 것이라는 지레 짐작에 변명이라도 늘어 놓자는 심산일지도 모른다.

지금 모 시민단체에서는 진해시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또 어떤 단체는 국회의원을 고발하기도 하는데 우리 카페에는

해군 작전사령부를 진해로 되 돌리는 운동을 요구하는 회원의 목소리도 카페지기가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아주 오래 전에 내가 장사를 하면서 터득했던 경험담을 하나 이야기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아마도 30여년 이라는 세월이 흘러 간 이야기지만 내게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이야기로 남아있다.

처음 진해 중앙시장에 <유아백화점>이라는 상호를 걸고 장사를 시작하고 1년이 지난 1982년도의 일이다.

당시만 해도 진해 중앙시장에는 판매가격을 정찰제로 운영하는 점포는 없었고 모두가 50~70%의 마진을 붙이고

손님따라 적당적당이 가격을 깍아 주는 인심을 쓰면서 판매할 때의 일이다.  

 

어차피 장사는 마진을 보기 마련인데 구테어 많은 이윤을 붙였다가 다시 깍아주는 번거로움이 불합리하다는 생각에

나는 과감하게 카운터 뒷편에 <100원도 깍아 드리지 못하는점 이해하여 주십시요.> 하는 간판을 걸고 정찰제 점포를

운영하기로 작정하고 이를 시도 했던 경험이 있다.

가격은 깍아야 맛이라는 정서에 익숙 해 있던 고객들은 "나는 이 가게에서 써 붙이고 달라는데로 주고 사기는 사는데...

내가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는 불평을 이야기 하면서 하나 둘 외면하며 손님들이 떠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진심으로 적정마진만 고집했고 160원 때문에 고객과 싸우면서 고객을 돌려보넨 이야기를 글로 써서

고객들에게 우송하고 나중에는 그 때는 제일 잘나가던 코미디언 배일집씨를 장복산에 초청해서 고객잔치를 하면서

나의 진심을 호소하며 정찰판매 제도의 장점을 설명하는 행사를 진행 했던 기억도 새롭다.

그 효과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2~3년이 지나서는 40평 매장에 손님들이 넘쳐나서 낮에도 셔터를 내리고

차레데로 손님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행복한 장사를 했던 기억이다.

 

지금 당장 진해시장을 물러나라고 한들 물러날 일도 없거니와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어 놓으라고 요구 한다면 그들은 순순히 그들의 모두를 내려 놓지 않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모두를 당장에 갈아 치우자는 발상은 혁명적 발상에 기초하였거나 서로가 싸움을 하자는 이야기와 같은 것이다.

그냥 시민운동은 가로등의 역활을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세상이 변하는 모습에 만족하고 즐거움을 느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얽힌 실타레를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사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르지만.~

얽히고 설킨 싵타레를 하나하나 푸는 묘미도 세상을 사는 맛이기에 우리는 얽힌 실타레도 풀면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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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2년도 4월 27일에 썼던 "160원의 시비"라는 글을 다시 한번 읽고 싶어서 옮겨 보기로 했다.     

 
< 160원의 시비 >

몇일 전 일이다.
저녁 때가되어 집사람과 직원들은 식사를 하러 들어가고 나 혼자 가게를 지키는데 40대 부부가 어린이 두명을 데리고 왔다.
이리 저리구경을 하다 완구부 앞에서 데리고 온 어린아이들에게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골라 보라는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 그 어린 아이들이 선택한 것은 2,580원짜리 완구 2개였다.

별다른 대화없이 선택한 제품을 포장하여 드리니까...
손님은 5,000원권 지패 한장을 내 밀고 돌아서 나갔다.
나는 혹시 손님이 착각을하고 계신가..? 싶어서 "손님 2,580원씩 두개면 5,160원입니다." 하니까
"그런데요..?" 하고 반문을 하길래
"손님이 지불하신 것은 5,000원입니다. 160원을 더 지불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160원은 당연히 깍아야 한다는 관념과 유아백화점은 꼭 정찰제를 실시하여야 하겠다는 나의 의지가 팽팽히 대립되었다.

결국은 거래는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그 어린이들은 자기가 가지고싶은 물건을 손에 넣었다는 기뿜이 살아지자 울면서 억지로

가게문을 나설 때 내가 너무 고집스럽고 우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지혜롭고 슬기롭게 이 순간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것이 내주관이나 신념을 위해서냐..? 아니면 고집과 자만심이 가득찬 오만한 내 자신의 문제이냐를 놓고 많은 시간을 생각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를 인정해 주기를 바라고 있으며 인정받는 사람이되기 위하여 어떤 때는 긍지와 자부심이라는 표현으로

자기 합리화를 주장하고 때에 따라서는 허욕과 허세라는 과잉표현 수단을 동원할 때도 있다.

내 자신은 자신만만하게 소비자의 입장이되어 소비자를 위하여 일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있지만 그것은 자기합리화를 위한

수단밖에 될 수없으며 누가 그것을 인정해주고 사회가 그것을 용납해줄 것인가..?
도저히 통용될 수없는 아프리카 토인의 말을 지껄이고있는 것같은 좌절감이 앞을 가린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을 돌려본다.
내가 왜 인정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 이렇게 목마르게 호소하고있을까..?
나는 판매업을 하기 전에 런닝셔츠 한개가 필요해도 메리야스 가게를 지나면서도 내가 사본적이 없다.
꼭 집사람에게 부탁해서 사 오도록 했으며 집사람이 남편에게서 선물하나 받아보지 못했다고 불평을 할 때는 스타킹 하나라도

사서 선물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물건사는 것이 두려워서 "그런 것은 해서 뭘해..!!" 하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내가 물건을 사면 물건값을 깍지 못하는 병패때문에 항상 바가지쓰고 손해보는 것 같아 마음이 찜찜해서 아예 물건을 사지않는

이상한 버릇이생겼다.

특히 의류는 질감,색상, 디자인의 다양성에 비례하여 내가 아는 상식이나 물건값을 깍는 실력으로는 아니라는 생각에

포기상태로 (그렇다고 우리 집사람도 물건값을 야무지게 깍지 못함을 스스로 인정함) 우리 부부나 아이들에게는 변변한

옷이 없는 실정이었다.

어린아이들 사진을 찍는 것을 업으로 하면서 어린아이들에게 필요한 제품을 공급하는 사업을 하고 싶은 생각에
유아백화점을 시작하고 판매업에 손을 대면서 내 자신이 과거에 격었던 일이 생각나서 유아백화점은 정찰제를 실시하겠다고

마음을 결정하고 이제까지 미련한 고집을 버리지 못하고 < 160원의 시비 >를 벌려야 하는 나 자신을 나는 지금 다시 한번

점검하고있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안 깍는 장사가 어디있느냐..?고 따지는 고객이나 물건은 깍는 맛에 산다는 애교있는 제스쳐를 써보이는

고객에게도 충분한 명분과 이유가 있겠지만 고객과 업주가 다 같이 절실하게 바라는 것은 서로 믿고 사고 팔수있는 신용사회

환경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으나 누가 하나 먼저 양보하지 못하고 팽팽히 끌고 당기는 가운데 상호 불신풍조만

태산같이 커 가고 오랜 시간이 경과하자 물건값은 깍아야 한다는 것이 관습처럼 우리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라본다.


그래서 나는 한사람씩이라도 서로 마음이 통하는 대화를 통해 태산같은 불신풍조의 장벽을 허물어 보자고 베비라 가족회의를

생각했고,내 분수에 지나치리만큼 경제적, 정신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이 행사를 강행하고있다.

오늘 베비라 가족회의를 통해 좀더 폭넓은 대화를 나누어 태산같은 불신의 봇물이 제방을 무너트리고 힘차게 넘쳐 흐르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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