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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이야기/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시민운동과 시민혁명

by 장복산1 2009. 10. 23.

나는 최근에는 아침마다 내 아내와 함께 여좌천을 따라 양어장인 내수면연구소로 올라가는 데크로드 길을 산책하며 올라가서 

양어장 입구에서는 신발을 벋고 50 여 미터의 지압보도를 걸으며 아침운동을 하고있다.

내수면연구소의 연못을 한 두바퀴 돌고 다시 집으로 돌아 오기까지는 대충 잡아 두시간 남짓 걸리는 시간 아침운동을 하고

하루 일을 시작하면 몸도 훨씬 가벼운 느낌이고 하루종일 하는 일의 능률도 오르는 기분이다. 

그러나 아마도 내가 아침마다 두시간 정도씩 노동을 하고서 하루 일을 시작한다면 아침운동을 하는 만큼은 몸이나 마음이

가볍지는 않을 것 이며 오히려 피곤하고 새벽부터 일에 지친다는 표현을 하며 힘들어 할 것이 분명하다.    

 

나는 요즘 전문적 지식도 없으며 어디서 배워 본 일도 없는 글을 쓰는 일이 자주 반복되면서 늘상 쓰던 말이나 단어들 마저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생소하다는 생각이 들 때는 국어사전을 찾아 보는 습관이 생기면서 글쓰는 일이 즐겁기도 하다.

오늘 새벽에는 누가 내가 쓴 글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시민운동을 한다는 사람에게는 행동하는 양심이 필요한데 어떤 일에

나서지도 않으면서 뒷짐이나 집고 서서 공자왈 맹자왈 한다는 비난을 하기에 진정한 시민운동의 의미가 궁금했던 것이다.

운동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는 1 사람이 몸을 단련하거나 건강을 위하여 몸을 움직이는 일. 2 어떤 목적을 이루

려고 힘쓰는 일. 또는 그런 활동.  3. 일정한 규칙과 방법에 따라 신체의 기량이나 기술을 겨루는 일. 또는 그런 활동.  등

으로 표기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 단순무식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단지 국어사전에서 <운동(運動)>이라는 단어만 하나 확인 했지만 대충은

시민운동에 대한 개념이나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람의 몸을 단련하거나 건강을 위하여 움직이는 일을 운동이라고 한다면 시민운동은 시민사회의 건강을 위하여 시민들이

스스로 움직이는 일이 시민운동이라는 판단을 너무 단순무식하고 천박한 논리라는 비판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건강이 유지된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물 흐르듯 흐르며 상식과 원칙이 존중되고 일정한

규칙과 방법에 따라 공정하게 시민 각자의 능률과 능력이 인정되는 사회를 우리는 건강한 사회라고 말할 것이다.

 

거리질서 켐페인을 하는 사람들이 질서를 외치는 피켓을 들고 빨간불이 켜진 신호등을 무시하며 거리를 활보한다면 과연

어떤 방법으로 질서를 유지하며 어떤 규칙이 그들에게 필요한지 한번 되 묻고 싶은 심정이다.

흔히들 말하는 대를 위해서는 소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강자논리를 구테어 들먹이지 않더라도 세상에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판단과 기준이 있기 마련이라 무엇이 가장 소중하고 무엇이 가장 큰 일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게 판단하고 받아 들이기 마련

이기 때문에 우리는 법률상 독자적 가치가 인정되는 자격인 각자의 인격(人格) 을 존중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인 것이다.

우리가 지금 진해시장의 독선적 사고와 판단을 나무라고 정당하지 못한 시정집행을 탓하며 상식이 통하는 시정을 요구하는

시민운동을 한다고 하는데 과연 그 판단과 기준은 무엇이며 어떤 근거를 가지고 하는 이야기인지 자문을 해 본다.

 

우리 근대사에서 가장 큰 변화와 개혁을 이룩한 5,16을 최근에는 5,15 군사정변(五一六軍事政變)으로 표현하지만 당시에는

모두가 5,16군사혁명(五一六軍事革命)이라고 하였으며 나는 혁명공약을 소리네며 암기하던 기억도 새롭다.  

내가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상식이란 6법전서(六法全書)에 기록된 사실도 없으며 상식이란 구구단 같은 수학공식

이나 백과사전에도 규정이 없는 살아서 움직이는 생물과 같은 사회적 규범이며 규약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시민운동은 어떤 초법적 수단과 방법으로 사회개혁을 꿈꾸는 혁명가 수준의 시민운동이 아니라

가로등같이 편안하게 어두운 골목길을 지키며 도둑이 발길을 스스로 돌리게 하는 그런 시민운동을 나는 기대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업마저  포기하고 행동하는 양심이되어 매일 머리띠 두르고 거리를 누비는 시민운동가들은 지금 우리 주위에

너무 많고 그런 일들은 전문 시민운동가들이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담당할 일이지 우리같이 평범한 시민들이 참여하거나

관여할 공간도 없고 사안도 아니라는 판단에서 하는 말이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살면서 1970년 1월 13일 열악한 노동조건에 항거하여 분신자살한 평화시장 재단사 출신의 노동자

전태일(全泰壹, 1948년)은 대한민국의 노동운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며 그를 열사로 추모하고 열악한 노동자들의 임금마저

착취하는 자본에 항거하는 노동운동에 전국민과 사회는 동의하고 박수치는 일을 상식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황제같은 7~8천만원 짜리 년봉의 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이나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달성을 위하여 거리에 나서는

정치적 목적이나 구호를 외치는 노동운동에 동의하고 박수치는 어리석은 국민들은 없으며 이는 상식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심판이 경기규칙을 지치지 않으며 내리는 편파적인 판정에 무조건 복종할 선수는 없으며 이는 상식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졸속통합반대 진해시민 범 대책위원회>는 스스로 협의하고 결정한 사실을 스스로 지키려는 노력도 없이 청원을 진행한

사실이나 스스로 어떤 협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한 단체를 대표하는 의사가 담긴 글을 시청 게시판에 게시하는 일들은 마치

졸속을 나무라는 졸속같은 시민단체의 행동이라는 지적을 그냥 작은 일이라고 치부하며 나에게 강자논리로 동의를 강요하지

말기를 바라며 세상에는 항상 자신의 주장이나 생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로 이해하기를 기대할 따름이다. 

 

나는 지금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꿈꾸며 시민운동을 하는 것이지 시민혁명을 꿈꾸고 시민혁명을 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