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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이야기/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지방자치의 허와 실(虛와 實)

by 장복산1 2011. 2. 6.

지방자치의 허와 실(虛와 實)

 

참여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고 기초 자치단체인 광주광역시 서구 시의원에 출마해서 당선된 이병완 의원은 지난 해 12월 초에 자신의 정치적 동지인 안희정 충남지사에게 "단체장이 `3선’ 못하면 바보"라는 한 통의 공개편지를 쓴다. 

 

광주광역시 서구의회 행정사무감사 후일담으로 쓴 편지에는 기초 자치단체 의원으로서 첫 행정사무감사를 마치며 남은 느낌이 혼자 간직하기에는 돌이켜 볼 일이 적지 않아서 신문지상을 통해서 공개편지를 쓴다는 내용이다.

 

이병완 의원은 참여정부 5년 동안 지방자치행정과 관련해 반성할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고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5년 내내 지방행정의 혁신을 외치고, 분권과 자율의 가치를 그렇게 강조했건만, 왜 일반 국민들은 행정의 변화를 체감할 수 없었는지 이제야 조금 감이 잡혔다는 이야기도 한다. 또한 그는 1주일 정도의 행정사무감사를 통해 얻은 첫 번째 결론은 `바보’가 아닌 이상 한번 자치단체장이 되면 3선(選)은 떼 놓은 당상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지역의 수십 개 단체가 지자체의 보조와 출연 등 예산지원으로 그물망처럼 얽혀 있으며, 지방자치단체장은 산하공무원들의 승진, 보직을 좌지우지하면서 산하 공무원들이 사실상 사시사철 단체장의 선거원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뇌물수수나 선거법 위반 등 범법으로 물러나지 않는 한 일단 자치단체장에 당선되면 3선, 적어도 재선은 불을 보듯 뻔한 구조라는 사실을 개탄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이숙정(35.여.민주노동당) 성남시의원의 '주민센터 행패' 사건이 국민들의 집중적 관심을 끌면서 지방자치의 실체적 진실이 도마위에 오른 느낌이다.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이 민주정치의 기본이라는 이야기까지 구태여 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성남시의회 이숙정 의원이 자신의 이름을 모른다고 주민센터에서 신경질적 행패를 부린 사건을 변호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이숙정 의원이 시의원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과시하려는 우발적인 단순사건으로 치부하기에도 왠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방의원의 정당공천제로 인한 폐단으로 다수당의횡포는 물론 집행부의 집요한 냉대로 왕따를 당하는 분노를 호소하던 어느 소수야당 시의원의 하소연을 들은 기억 때문이다. 지방자치의 핵심인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의 역활 분담은 중앙정부와 정당의 지나친 간섭으로 인하여 애초부터 구조적 모순을 가지고 태어난 불량품이다. 흔히 지방자치를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민주주의의 바탕이라는 뜻으로 새겨듣고 있다. 그러나 어원을 따지면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지역, 시민, 주민들의 소외와 배제에 대항하는 개념이 강하다.

 

민주주의가 대의(代議)민주주의 형태로 발달하면서 민주주의 역시 중앙집권적, 수도 중심, 국가전체 중심으로 흘러갔고, 정작 자기 고장, 자기 지역, 자기 동네의 문제는 도외시되는 경향을 띄어 왔다. 풀뿌리 민주주의(Grass-roots democracy)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연유도 이런 소외, 배제의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모색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나는 진해, 마산, 창원이 통합되는 지자체 통합과정에서 정작 자기지역 자기 동네의 문제가 자신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진행되는 지방자치의 허상(虛像)을 똑똑히 목격한 경험이 있다.

 

지역의 문제인 지자체자율통합은 주민투표로 결정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는 진해시의원 13명에게 내용증명 우편물로 주민투표실시를 약속 받았지만 지역 국회의원의 개입으로 주민투표가 무산된 사실을 기억한다. 더욱 분명한 사실은 며칠 전 안홍준 의원이 실토한 지자체의 "통합을 추진할 때 명칭은 창원, 청사는 마산에 오는 것으로 이미 주요 정치적 당사자들끼리도 이야기가 된 사안이다." 는 이야기는 사실상 지방의회를 무시하고 지방자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방증(傍證)이다. 또한 지방의원의 정당공천제로 인한 지방자치의 대표적인 구조적 모순을 스스로 이야기 하는 것이다.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할 참여민주주의의 새로운 접근을 상징하는 지방자치인 풀뿌리민주주의는 정권 획득이 목적이 아니다. 지역주민들 또는 자기 고장, 자기 동네의 소소하지만 자기 생활에 소중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주민들 스스로 참여해 자율적, 자치적으로 해결책을 찾자는 것이다. 이런 참여민주주의의 기본적 출발인 지방자치제도는 정치적 행위임은 맞지만 권력쟁취의 정치가 아니라 생활변화의 정치라는 뜻이라면 주민들의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참여가 우선해야 한다. 

 

그러나 지방자치의 기본인 지방의원과 자치단체장을 중앙집권적 정당공천제로 운영하는 구조적 모순은 공천권을 무기로 지방의원들을 농락하는 국회의원들의 막강한 권력의 그늘에 가려서 주민은 없고 정치만 있는 우리나라 지방자치 20년의 역사다. "단체장이 `3선’ 못하면 바보"라는 말이 의미하는 "지방자치의 허와 실(虛와 實)"을 국민 모두가 다시 한 번 따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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