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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리고 이야기/이춘모의 여행후기

가을 햇살을 맞으며 걸어본 선비길 (5)

by 장복산1 2011. 10. 15.

(1) 천년의 숨결 해인사

(2) 천년의 소리 ‘소리길 탐방’

(3) 농부 시인을 만나다.

(4) 합천 영상테마파크 탐방

 

 

경남도민일보와 쥬스컴퍼니가 주최하고 갱상도 문화학교 추진단이 주관한 '합천 명소 블로거 탐방단' 에 처음 참여해서 처음부터 다섯 꼭지를 포스팅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 화근입니다. 마지막 한 꼭지를 남겨두고 다른 바쁜 일도 있었지만 글 쓰기를 멈추고 나니 다시 글 쓰기가 두렵고 게으름만 피우게 됩니다. 오늘도 충북 괴산을 여행할 계획이 있어 새벽에 깬 잠을 핑계로 글 쓰기를 마무리 한겠다는 용기를 내 봅니다.

 

오늘은 가을 햇살을 맞으며 걸어본 선비길 이라는 글 제목을 미리 정한 것을 후회합니다. 그동안 블로그에 글을 쓰고 내 글을 읽어 줄 방문객들을 기다리며 블로그 글쓰기 공부를 나름으로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내가 쓰는 글은 다른 사람들이 쓰는 글과 무엇이 다를까? 과연 나는 블로그를 통해서 누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있으며 그런 나의 생각은 올바르게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등을 고민하며 글 쓰기 공부를 계속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글의 제목이 미치는 영향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전혀 의도하지 않은 다른 방향으로 또 글이 장황하게 흘러 가는 기분입니다.

 

진정한 선비가 그리운 세상

사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마지막으로 각자에게 주어진 선택의 기회를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바꾸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모산제와 영암사지 코스를 선택했는데 코스가 무척 힘들어서 등산화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아예 포기를 하라고 겁을 주는 식당아주머니의 말에 질에 질겁을 하고 남명 조식 선비길로 코스를 바꾸었습니다. 그런데다 동행하는 달그리메님이 선비길은 정말 볼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합니다.

 

나는 솔직히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이 이번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남명선생의 선비길을 진주에서 산청을 거쳐 지리산을 오가며 보던 산청 원리(院里)에 있는 덕천서원과 산천제로 연결되는 길인줄 잘못 알았습니다. 안동 하회마을 같은 남사예담촌이 있는 산청 원리의 덕천서원과 산천제까지 탐방할 것이라는 기대는 나의 착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선비길은 남명선생의 생가지가 있는 합천 삼가 외토리 토동(兎洞 톳골) 들판에 자리잡은 뇌룡정(雷龍亭)에서 생가지를 둘러보고 합천 삼가까지 걸어 가는 들판길이었습니다. 뇌룡정은 조선문화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우남명과 좌퇴계로 불리던 조선 중기의 재야학자 ‘남명 조식(南冥 曺植) ’선생이 48세부터 60세까지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이라고 합니다. 뇌룡정을 둘러 보고 나오는데 인심좋은 할머니 한 분이 잘 익은 대추를 따가지고 나오시다 일부러 보자기를 풀고 잘익은 놈으로 한 주먹 쥐어줍니다. 정말 달고 맛이있습니다.

 

방치된 남명선생 생가지

임금이 나라 일을 잘못 다스린 지 이미 오래되어, 나라의 기틀은 이미 무너졌고, 하늘의 뜻도 이미 떠났으며 백성들의 마음 또한 이미 임금에게서 멀어졌습니다. 비유하자면 큰 나무가 백년동안이나 그 속을 벌레한테 파 먹혀 진이 빠지고 말라죽었는데도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폭풍우가 닥치면 견디어 내지 못할 위험한 상태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실정에 있은 지가 오랩니다. 달그리메님이 미리 이야기 하듯 정말 볼거리 하나 없는 들판길을 걸으면서 남명선생의  을묘사직서(乙卯辭職疏)한 구절을 떠 올립니다.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용기가 있는 선비다운 선비가 그리운 세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원칙도 없고 상식도 없는 세상에는 온통 아부하며 호들갑 떠는 선비들만 가득합니다.

 

 

뇌룡정(雷龍亭)과 용암서원(龍巖書院) 을 바라 보는 외토리 마을에 있는 남명선생의 생가지는 그냥 방치되어 있습니다. 우거진 숲풀 속에 안내판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습니다. 생가지 들머리에 서 있는 입간판 말고는 별 다른 안내표지판도 없어서 외토리 골목을 한 참 해메고 나서야 남명선생 생가지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한가롭게 펼쳐진 도로를 점령하고 자유분방하게 걸으면서 서로가 친해지고 있습니다. 가끔은 길가에 늘어진 대추나무에서 대추도 따 먹고 양천강 물을 바라보며 사진도 짂었습니다.

 

 

 

 

 

         황금 들판이 길손의 발길을 넉넉하게 감싸주고 있습니다. 마음까지 풍요를 느끼는 길입니다.

 

 

 

오래 기억하고 싶은 여행

아무 생각도 없고 작정없이 걸어 가는 길 위에서 무언가 깨달음을 얻는 모양입니다. 얼마를 걷다 쉬어가는 정자나무 그늘에서는 즉석 토론도 이어집니다. 달그리메님이 이제 세상을 보고 경험하는 지수님에게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무엇이건 도전하고 경험해 보라는 권유를 합니다. 이유 없이 내가 참견하고 날을 세워 보기도 합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거 저거 간섭하다가는 경쟁사회에서 살아나기 함들다는 이론으로 맛서 봅니다. 그래도 뒤 돌아 보면 내가 세상을 살면서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 후회도 합니다.

 

 

선비길은 남명선생 생가지에서 삼가까지 지칠만큼 8~9Km를 걸었습니다. 합천 삼가는 삼거리 길에서 유래해서 생긴 지명이라고 합니다. 삼가 황토한우가 그렇게 맛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허기진 배가 지친 발길을 제촉합니다.  삼가장터 3,1만세운동 기념답을 지나 장터 골목에서 촐촐하던 배를 체우며 먹어 본 삼가황토한우는 정말 맛이 있습니다. 언제고 꼭 다시 한 번 집사람과 같이 가서 맛을 보여주고 싶은 맛입니다.

 

 

 

 

여행은 언제 누구와 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기억과 감흥을 주는 모양입니다. 평소에 무심하게 지나치던 길들을 이번 여행에서는 아주 특별한 감흥을 느끼며 즐거웠던 추억으로 오래 간직할 것 같습니다. 함께 여행을 하며 알뜰하게 챙겨주고 친절을 배풀었던 갱불 파워블로거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특별히 정운현 선생이 갓 출판한 '친일파는 살아 있다.'는 책을 선물받은 일이나 김용택선생님의 자상한 친절은 이번 여행의 소중한 기억으로 아주 오래 간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