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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이야기/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창원시가 진해군항제를 몰수한 사연

by 장복산1 2012. 4. 2.

이제 진해 군항제는 5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반세기의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이나 진해 군항제는 춤고 긴 겨울잠을 깨우는 대한민국의 대표적 봄 축제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벚꽃축제로도 불리는 진해 군항제는 지난 1952년 4월 13일, 우리나라 최초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북원로터리에 세우고 추모제를 거행하여 온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이충무공 동상이 있는 북원로터리에서 제를 지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다 1963년부터 진해군항제위원회라는 민간단체를 만들어 축제를 개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은 충무공의 숭고한 구국의 얼을 추모하고 향토문화예술을 진흥하자는 취지로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주축이 되어 출발했습니다.

 

나는 진해 군항제하면 고 유택렬 화백과 사진작가 고 진병순 선생이 생각납니다. 두 분이 종종 군항제 행사를 전후해서 유택렬 화백이 운영하던 흑백다방에서 사진과 미술에 대한 예술적인 가치와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다투며 논쟁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유화백은 주로 사진은 카메라라는 메커니즘으로 만든 상품이라는 주장을 하면 진선생은 카메라는 단지 화가들이 사용하는 붙이나 화판같이 작품을 창작하는데 필요한 도구며 메커니즘기술을 이용할 따름이라고 주장하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진해 군항제는 지역에서 정치적 영향략이 있고 사업가적 기질이 있는 고 이상인선생과 체육교사 출신인 박이율 선생이 합류를 합니다. 고 이상인선생은 국내 유수의 기업체들을 직접 방문해서 군항제 축제 광고 스폰서를 받아 내면서 군항제 행사의 규모를 키웠습니다. 진해 군항제는 전국규모의 예술문화 행사와 함께 전국적 체육행사 및 팔도명산물시장까지 유치하게 됩니다.

 

문제는 처음 복개천에 팔도명산물시장을 개장하면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관선시장시절 지역 유지들로 구성된 진해군항제위원회는 군항제의 행사규모가 커지는 것과 비례해서 시정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지기 마련입니다. 복개천에서 시작한 팔도명산물시장은 결국 공용도로를 막아 포장을 치고 잡상인들에게 도로를 분양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한 두해는 진해시청에서 군항제를 주관했던 기억도 납니다.

 

내가 진해청년지도자협의회 회장을 하던 1989년 당시 관선시장이 청년단체의 힘을 빌려 군항제위원회의 예산집행 내역을 공개하는 문제와 민간단체의 개혁을 시도하던 일도 기억에 있습니다. 관과 민간단체가 서로 보이지 않는 반목속에 진해 군항제위원회는 사단법인 이충무공호국정신선양회로 단체를 법인화하면서 지역에서는 가장 영햐력있는 민간단체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사)이충무공호국정신선양회'(이하 '선영회')와 '(사)진해중앙시장번영회'(이하 '번영회')는 진해에서 꼭 개혁이 필요한 두 민간단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양회와 번영회는 매년 막대한 국가예산을 지원받는 법인이며 민간단체입니다. 그러나 단체의 운영 내역이 투명하지 못한 문제도 있지만 공공성이나 공익을 우선해야 하는 사회단체와 사단법인의 설립취지에 부합하지 못하는 운영상의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양회는 매년 군항제 행사를 핑계로 수억원의 국가예산을 지원받습니다. 그리고 봉이김선달이 대동강물을 팔아 먹던 식으로 시민들의 공용도로를 가로막아 천막을 치고 전국 잡상인들에게 분양을 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고 진해시민들에게 어떤 양해를 구하는 절차나 사후 보고조차 부실하기 그지 없습니다. 

 

선양회 이사장은 2선 3선을 위한 치열한 로비전도 합니다. 선양회 이사로 입회를 하려면 입회순번을 기다리며 대기를 해야 한다는 소문까지 들립니다. 선양회는 단 열흘의 축제행사를 위해서 일년 내내 상근하는 직원을 체용하는 문제나 도로를 팔아 분양한 돈으로 선양회 운영이나 이사장 판공비까지 지출하는 문제를 비판하는 시민들도 있습니다. 이사장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법인을 좌지우지하는 문제도 시민들의 눈총을 받는 가장 큰 이유에 포함됩니다.

 

지자체가 통합되면서 창원시와 선양회는 군항제 운영문제로 처음부터 잡음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군항제 기간에 창원시가 선양회와 협의도 없이 예산을 업자에게 직접 집행한 문제로 서로 불편한  모습을 노출했습니다. 금년에는 창원시가 '제50회 진해군항제'를 세계적인 명품축제로 변화시키는 원년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창원시는 기존의 선양회를 배제하고 '군항제축제위원회'를 일방적으로 서둘러 새로 구성했습니다.

 

그러나 변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민간축제에 관의 일방적인 간여와 간섭만 늘었습니다. 특히 군항제축제위원회 Y모 위원과 업자 L모 씨가 가설점포 모집공고 및 분양과정에 깊숙이 개입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소문이 나도는 등 행사 진행 초기에 전매와 특혜의혹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협찬할 업체의 사전 협찬금액 승낙도 없이 거리 곳곳에 미리 아치를 설치하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개혁이 목적이 아닌 것 같습니다.

 

군항제축제위원회는 또 음식점, 잡화 등의 판매시설인 부스(텐트) 140동을 비롯한 이동식 화장실, 전기, 아치와 탑, 인쇄물 등을 설치하거나 제작하면서 업자와 공사금액 책정은 물론 사전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은 채 작업을 진행시켰다는 사실은 주먹구구에 뒤죽박죽입니다. 창원시는 선양회의 운영상 문제점을 문제삼아 행사개최권을 몰수하는 수준의 무리수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축제 진행이나 행사를 집행하는 과정은 뒤죽박죽이고 효율적으로 예산을 집행했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창원시가 금년에 군항제를 선양회로 부터 몰수하면서 내 세운 표면적인 이유는 진해 군항제를 세계적인 명품축제로 탈바꿈 시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외형상으로는 '진해 군항제축제위원회'라는 민간단체를 새로 구성했습니다. 그러나 단체의 이름과 사람만 바뀌고 말았습니다. 변한 것은 축제위원장을 지자체통합의 선봉에 섰던 김형봉 전 진해시의회 의장이 맏았다는 사실뿐입니다.

 

지난 50년간 선양회가 이어 오던 군항제 행사를 지자체가 통합되면서 새로 '군항제 축제위원회'를 구성했다는 사실은 군항제를 창원시가 몰수하는 수단이라는 생각입니다. 지난 31일 저녁에 진해 중원로타리에서 개최한 제50회 진해 군항제 전야제를 관람하면서 진해시 자치권이 창원시에 흡수되고 결국은 군항제 행사마저 창원시에 몰수된 기분은 씁쓸합니다. 통합의 주역들이 군항제 전야제 단상을 점거하고 있었습니다.

 

김형봉 전 진해시의회 의장과 김학송 국회의원 그리고 박완수 창원시장이 대회사와 환영사를 이어가는 동안 통합의 주역들이 모여 그들만의 잔치를 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주변을 맴돌던 나이든 진해사람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 가는 모습은 더욱 초라하게 보입니다. 진해 군항제 행사를 50년이나 이어 오던 '(사)이충무공호국정신선양회'의 투명하지 못한 운영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자체가 통합되면서 창원시가 진해의 자치권을 흡수통합하고 군항제마저 몰수한 문제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이제는 시대가 변하면서 왠만한 공공기관의 업무들을 민간단체나 민간기업에 위임하는 추세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원시는 지난 50년간 민간단체에서 운영하던 군항제에 운영상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이유로 오히려 행사 개최권을 몰수하고 말았습니다. 

 

창원시가 통합의 주역들을 앞세워 새로 구성한 '군항제 축제위원회'를 보는 시민들의 시각이 곱지 않은 이유입니다. 창원시의 군항제 몰수사건은 관이 시민들 위에 군림하려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들어 내고 있다는 생각만 듭니다. 군항제가 개최되는 구간의 도로에는 이번에도 향토음식관, 페스트후드, 지역특산물 코너라는 이름만 바꾼 봉이 김선달 길 팔아먹기는 여전합니다.

 

그리고 군항제 행사는 벚꽃도 없는 행사에 주먹구구식으로 엉망진창에 뒤죽박죽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자체 통합을 명분으로 모두를 합치고 보자는 것이  창원시가 진해 군항제를 몰수한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