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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이야기/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거창 원기마을의 여름밤

by 장복산1 2012. 8. 11.

지난 주말에 나는 거창 유정농원 산삼밭을 구경하고 관리사에서 하루밤을 지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산삼밭을 둘러친 3중 철조망 출입문이 자동개패장치라는 문제도 있었고 이런 저런 여건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좀 난감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마침 자리를 같이 했던 최용환님이 원기마을로 가자고 합니다.

 

원기마을은 무주와 거창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1,254m의 삼봉산 자락에 위치해 있습니다. 거창읍내에서 소사고개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다 고개 아래 첫 동내인 해발 640m 의 '원기마을'에 사는 최용환님은 오늘 처음 만나서 인사를 나누는 사이지만 왠지 편안하고 친근함을 느끼게 합니다.  

동행하던 후배인 석종근님이 최용환님은 거창군의회 의원을 두번이나 지내고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서 거창군수에 출마했던 경력이 있다는 소개를 합니다. 보통 지방의원이라도 한 두번 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정치인 냄새가 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주 평범하고 소탈한 시골농부가 틀림 없습니다.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이웃같이 편한 마음으로 원기마을 찾았습니다. 거창군 고제면 원기마을은 신라 수노왕의 아들 7형제가 칠불암에서 수학을 하고 있었는데 왕이 왕자를 찾아 다니면서 쉬었던 곳에 큰집을 지어 이를 원이라 부르면서 "원터"(원기)라 호칭했다고 합니다.

 

원곡사를 찾아가던 원님이 이곳을 지나던 중 날이 저물어 문바위 및에서 하루밤을 쉬어갔다고 해서 이곳을 원터(원기)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저녁에 마을회관 앞 정자에 모여서 더위를 식히는 동네 어르신들이 원기마을은 원님이 쉬어간던 곳이라 원기마을이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은 자료입니다.

 

 

원기마을 맨 위에 좀 움푹 내려 앉은 듯 한 지형에 자리잡은 최용환님의 집터는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음택(陰宅)이라고 합니다. 집터가 음택이라 그런지 아니면 원기리가 해발 640m라 그런지 밤에는 이불을 덥고 자야할 정도로 추위를 느꼈습니다. 보통 지방의원이라도 한 두번 한 정치인들은 의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티를 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최용환 전 의원은 전혀 그런 내색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를 따라 울릉도 고로쇠나무를 키우는 농장을 올라 갔습니다. 농장을 가는 길에는 그가 키우는 한우농장도 있었습니다. 

 

 

원래 거창은 거창사과로 유명한 고장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군에서 울릉도 고로쇠나무를 농촌 소득사업으로 정책적 지원을 하고 장려하는 영농사업인 모양입니다. 고로쇠나무를 많이 심어서 키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도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할 때는 열심히 정치를 하고 임기가 끝나면 자신의 본연의 직업으로 돌아와 충실한 자신의 삶을 사는 최용환 전 의원 같은 참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정치에 한 번 물이 들면 패가망신을 하던가 아니면 평생을 정치권을 맴돌며 방황하는 한심한 모습들이 우리의 정치현실 입니다.

 

그러나 최용환 전 의원은 군의원을 두 번하고 거창구수 선거에도 입후보 했던 화려한 정치경력들을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완전한 농사꾼으로 돌아 와 있었습니다. 한우를 키우고 고로쇠 나무를 키우는 그의 모습은 철저하고 전형적인 농부입니다. 나무를 키우는 농장을 오르는 길에는 한우 축사가 있고 농장에는 농막도 있습니다. 그리고 농장을 가로 지르는 길을 따라 올라가니 삼봉산이 마주 보이는 농장의 정상 부근에는 마치 옛날 선비들이 시를 읆고 세상을 노래하던 정자같은 간이농막이 하나 더 있습니다. 여기는 세상모두가 발 아래 있는 듯 합니다.

          

 

 

우리는 천렵이라도 나온 사람들 같이 민물고기를 넣은 수제비국으로 저녁을 먹었습니다. 최용환님은 자신이 직접  가마솟에 불을 지퍼 물을 끌이고 있습니다. 얼마되지 않아 이웃에 사는 친지들이 촌닭을 두 마리 잡아서 들고 찾아 왔습니다. 우리는 원기마을의 여름밤이 깊어 가는 줄 모르고 가마솟에서 푹~ 익은 촌닭을 안주삼아 밤이 새도록 술을 마시며 세상사는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잔디가 깔려있는 마당에는 자연석위에 술상이 차려지고 자연석으로 의자를 만들어 술잔을 기울이니 이보다 더 멋진 밤을 나는 기억하기 어렵습니다. 모기도 없습니다.

 

 

마치 오래된 이웃같이 스스럼 없이 대화는 이어지고 술잔은 기울어지다 보니 밤이 새는 줄을 모릅니다. 사실 나는 쉽게 사람을 사귀지 못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천성적으로 오래된 이웃과도 꼭 필요한 말만 하거나 인사를 나눌때도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목례정도나 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나 거창 원기마을의 여름밤은 이런 나를 해방시키고 말았습니다. 처음 만난 이웃과 전혀 어색하지 않게 이렇게 오랜 시간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마 나에게 오래 오래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