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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이야기/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베비라 협동조합 탄생의 꿈

by 장복산1 2013. 4. 16.

이 글은 내가 유일한 자신의 생계수단으로 삼고 30년이 넘도록 운영하던 업체의 본사가 부도 나면서 회사의 회생과 파산을 거쳐 다시 매각하는 긴 여정과 고통속에 탄생하는 협동조합에 관한 글입니다.

 

나는 전국에 산재한 전문점들을 규합해서 '전국 베비라전문점 협의회'를 만들고 드디어 전국 전문점과 생산업체들이 힘을 모아 '베비라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나는 이제 협동조합에 유일한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지난 해 12월 1일 발효된 <협동조합 기본법>이 약자들의 유일한 삶의 대안이고 희망이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공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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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비라 협동조합 조합원들에게 드리는 글

어제는 서울로 올라 오는 길에 전주 내의공장에 들려서 생산일정을 협의하고 올라왔습니다. 그냥 메일로 자료를 주고 받으며 전화로 생산일정을 협의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서울로 올라 오면서 전주공장에 들려서 직접 대면해서 이야기하는 것하고 들리지 않고 전화로 협의하는 것 하고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비교가 않되는 큰 차이가 납니다.

 

나는 우주창조의 신비 만큼이나 조물주가 인간을 창조하면서 인간의 양면성을 함께 창조한 사실은 인간이 스스로 해석할 수 없는 한 차원 높은 조물주의 큰 뜻이 담겨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 있으면 자리에 눕고 싶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서 있으면 멀리 보이고 누어 있으면 천정만 보이게 됩니다. 사람이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대가를 바란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노력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심리입니다. 

 

나는 어제 전주로 출발하기 전에 과거에 내가 카메라도 없이 사진관을 차릴 때 기록들을 스케너로 스켄하면서 다시 자신을 돌아 보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내가 생각해도 내가 과거에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하고 열심히 했는지 스스로 놀라게 됩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모든 주변 여건들은 그 때와 비교할 수 없이 좋은 여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게으름만 피우면서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투정만 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도 카페에 한 번 글을 썼던 이야기 입니다. 1973년 9월 16일 진해역옆에 카메라도 없이 '창조사'라는 카메라 DP점을 차리고 3일이 넘도록 기다려도 손님이 오지 않자 만들었던 '카필모임' 회원권 사진입니다.

 

내가 40년이나 지난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계속  카페로 끌어 내어 글을 쓰는 이유에 반감을 가질 전문점 사장님도 있을지 모릅니다. SNS로 소통하는 21세기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를 가지고 길고 지루한 글만 쓰고 있다고 핀잔 받을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40년전 마케팅 기법을 지금 똑 같이 재현하자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 때 내가 하던 열정과 노력을 지금 우리가 같이 시도하는 베비라 협동조합에 적용해 보자는 제안을 하는 것 입니다. 열심히 하고 노력하는 만큼 분명한 대가는 오기마련입니다.

 

 

누렇게 빛 바랜 40년전 '사진동우회보,를 보는 나는 감회가 새롭습니다. 솔직히 40년전 대한민국 어느 사진관도 이런 영업마케팅을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경상도 어느 시골 도시에 있던 내가 하던 일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이는 '사진사' '사진쟁이'하던 호칭을 사진작가로 격상시키는 브랜드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진해 Amateur 사진작가 동우회' 라는 명칭 자체가 이미 카메라를 메고 기념사진이나 촬영하던 아마추어 사진인들을 '사진작가'로 만드는 브랜드화 작업이었습니다.

 

나는 이 조직을 가지고 당대 대한민국 사진작가협회의 최고 수장이었던 '한국사진작가협회'이정강 중앙대학교 교수를 진해까지 불러 내렸고 '제1회 전국 Amateur 사진촬영대회'를 개최하여 지금까지 매년 군항제 기간에는 '전국 벛꽃사진 촬영대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마추어 써클에서 가르치고 배출한 사진작가들이 지금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빛 바렌 사진동우회보를 기점으로 대한민국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에게 사진학을 강의하는 강사까지 되었습니다. 

 

 

'카필모임'이라는 조직으로 아기사진을 촬영하면서 아기들에게 필요한 제품을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시작한 진해 베비라 전문점이 개업할 때 사진입니다. '백양베비라'라는 문구가 시선을 끌고 있군요. 년말에 베비라 대표였던 임용빈 사장이 보넨 여성잡지들을 가지고 추첨해서 상품을 주던 시절의 이야기 입니다.

 

좁은 매장이 미어지도록 손님들이 몰려 오도록 했던 것은 당 시에는 누구도 하지 않았고 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고객관리'라는 것을 나는 도입해서 운영 했습니다. 

 

양머리가 그려진 '백양' 이라는 마크를 앞에 세우고 베비라를 브랜드화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때는 백양메리야스와 쌍방울 메리야스가 쌍벽을 이루며 경쟁하던 시절입니다. 면 제품이라면 '백양'하던 시절이지요. 

 

지금은 이런 엽서를 보네 보아야 누구도 처다 보지도 않습니다. 이제는 SNS로 소통하고 카페에서 의견을 나누며 자신의 블로그로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마케팅기법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러나 가장 젊은 여성층인 아기엄마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겠다는 베비라 전문점 사장님들이 카페에 가입하고 카페에서 서로 소통하는 인터넷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정말 부끄럽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시대는 바뀌며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제품에도 라이프싸이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제품의 수명이라는 의미지요. 제품의 라이프싸이클은 제품의 수명이 다 해서 새로운 제품을 생산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더 좋은 제품, 더 좋은 디자인을 위한 끝없는 도전이 지속적으로 신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와 같은 제품의 라이프싸이클 주기도 점점 단축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페스트 후드, 피스트 페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도 시대 따라 변화해야 삽니다.

 

 

대한민국 베비라 전문점 중에서 30년 전에 전문점의 독립된 '판촉실'을 운영하던 전문점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 하면 우편엽서에 진해우체국 에서 제3호로 수취인 후납부담 우편물 발송 승인을 받은 것이 1985년이니 28년 전 일이군요. 출산준비물부, 유아복부, 아동복부, 메리야스부, 완구부, 육아용품부, 사진부, MVP스포츠부까지 8개 코너를 독립형으로 운영했던 열정과 노력을 나 자신이 지금은 모두 팽개치고 손님이 없다는 불평만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물망에 올라있는 안철수 교수가 해군 대위로 근무하던 시절에 내가 운영하던 삼성컴퓨터 진해대리점 무료강의실에서 자신이 개발한 컴퓨터 바이러스 치료제인 V3를 강의하던 시절의 진해 삼성컴퓨터랜드와 내 모습입니다. 내가 봐도 그 때는 내가 젊었고 열정이 넘치던 시절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나는 그 시절의 열정과 경험을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라면 다시 그 열정에 불을 지필 수 있을 것 같은 욕망이 넘치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경상도 어는 시골 도시에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심장인 서울특별시에서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자리 잡고 있는 여러분과 함께 대한민국  베비라 협동조합을 설립해서 "베비라"를 대한민국 최고의 유아 브랜드로 만들 수 있는 기회이고 그 자심감과 욕망도 넘치고 있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이 작은 불씨에 불을 지피면 됩니다. 나는 여러분을 믿고 여러분이 나를 믿으면 됩니다. 서로가 작은 정성만 보테면 됩니다. 카페에 댓글을 달고 자신의 분명한 의사표시를 하고 베비라 전문점이 나의 유일한 생계수단이라는 생각으로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겠다는 각오와 생각만 '베비라 협동조합'에 보테면 됩니다. 우리는 지금 불가능보다는 가능성이 더 큰 일에 도전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러나 도전도 하지 않고 미리 포기하면 안타까움만 남습니다.

 

나는 나의 경험과 열정을 여러분에게 보테려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좀 더 적극적인 사고와 새로운 발상으로 오늘에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댓글로 여러분의 화이팅과 의지를 모아 주세요.  화..이..팅..!!

감사합니다.

 

2013년 4월 16일 오전 8시 45분

수원에서   이춘모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