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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이야기/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전자소송제도의 도입과 법원의 변화

by 장복산1 2015. 5. 25.

나는 지난 6개월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나홀로 전자소송으로 우리 조합원들의 부동산 담보해지 소송을 진행하면서 대한민국 법원이 변화하는 모습을 직접 경험하고 전자소송제도의 도입으로 법원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전 같은면 나 같이 법을 전공하지 않은 법의 무뢰한이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나홀로 소송을 진행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나는 지금 내가 30년 넘게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거래하던 본사가 어느 날 갑자기 대책 없이 부도 나고 파산하는 바람에 대리점들을 규합해서 협동조합을 설립해서 본사가 하던 일을 대행하고 있습니다. 제품을 생산해서 공급하고 조합원들이 대리점영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일이 가장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아직 협동조합을 설립하기전에 부도난 회사에서 발생했던 일들을 마무리하는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프랜차이즈 방식의 회사들은 보통 자신들의 채권확보를 위해서 대리점 개설조건으로 부동산 담보제공을 요구합니다.

 

회사가 부도 나고 파산하는 괴정은 안타깝게도 회사를 서로 합치고 나누는 M&A를 통해서 회사를 주식시장에 상장하고 주식의 시세차액을 노리는 전문투기꾼들이 회사경영에 개입하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조합원들이 대리점 개설조건으로 제공한 부동산 담보의 근저당권이 A, B, C 라는 각기 다른 회사가 담보권자로 등제되어 있습니다. 회사를 합병하고 분할하는 과정에 담보이전을 하지 않은 상태지요.

 

이미 회사의 파산재단은 파산을 종결하고 해체된 상황이라 재판과정을 거치지 않고 달리 담보해지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조합원들의 담보해지 소송을 진행하려고 여기저기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 보았지만 생각보다 많은 보수를 요구합니다. 나중에는 법률구조공단까지 찾아가서 상담도 해 보았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나홀로 전자소송입니다.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새로운 소송방식입니다.

 

 

대법원 전자소송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소장을 접수하고 소송비용을 납부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왠만큼 컴퓨터를 다룰 수 있고 일반적인 상식수준으로 법을 이해할 수 있다면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소장도 법원에서 제시하는 예문에 자신의 경우를 대입해서 작성하면 됩니다. 소송비용도 컴퓨터로 자동계산해 주면 온라인으로 납부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냥 소설책 읽는다는 생각으로 대법원홈페이지를 마구 뒤지며 자료들을 읽어봅니다.

 

법은 나하고 상관 없는 일이고 나는 법이 어려워서 모르겠다는 생각이 바뀌면서 점점 자신감이 생깁니다.

 

법은 상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나홀로 전자소송을 시작해도 됩니다. 내가 나홀로 전자소송을 시작할 수 있었던 계기는 "부러진 화살"이라는 영화를 보고 영화의 주인공인 김명호 교수가 쓴 "판사 니들이 뭔데"라는 책을 읽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재판받을 권리가 있고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적어서 법원에 제출하는 것이 준비서면 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생각했던 재판과정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일들이 현장에서는 당연한 사실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자기가 변제할 채무를 변제했다면 해당 채무를 담보하기 위해서 설정한 담보권을 해지해 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냥 이야기로 하면 누구나 어디서나 모두 이해하고 인정하는 사실을 법으로 판단하고 해결하기란 그렇게 쉽지가 않았습니다.  

 

무려 6개월 간의 재판과정을 거쳐서 어제 부동산담보 해지 판결문을 송달받았습니다. 원래 법이라는 것은 상식에 기초해서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정한 규정입니다. 사실은 별거 아니지요. 그러나 막상 자기에게 닥친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려면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용어 하나하나를 가지고 까다롭게 따지고 듭니다. 마치 법은 법률전문가들의 전유물인 것 같이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거나 법무사에 의뢰 하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재판받을 권리가 있다고 하지만 막상 재판을 받으려고 하면 일반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법률 용어들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려면 변호사를 선임하고 돈을 주어야 합니다. 아니면 최소한 법무사의 조력을 받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물어 보라고 정부에서 예산을 투자해서 운영하는 법률구조 공단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변호사들 일거리를 찾아 주는 사건브로커들 같은 느낌을 받는 이유를 나도 모르겠습니다. 최소한 내가 찾아가서 상담한 경우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하면 법을 그렇게 까다롭게 운영해야 하는 이유에 동의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아무리 정교하게 법을 운영해도 세상에는 머리 좋은 사기꾼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수백명의 경찰을 동원해도 도둑 하나를 잡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교묘한 방법으로 법을 이용해서 사기를 치는 사람들도 많지요. 판사도 사람인지라 전지전능하게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판결할 수 없다는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까다롭게 법을 운영하는 문제도 있는 것 같고 어떤 경우는 별 것 아닌 것 같은 용어 하나가 참이 거짓이 되는 경우도 있지요.

 

어제 판결문을 송달 받고 내가 먼저 법무사 사무실로 달려간 이유입니다. 내용은 뻔 합니다. 담보로 제공한 물건에 대한 채무를 모두 변제했으니 근저당권을 베비라협동조합으로 이전하고 베비라협동조합에서 채무해결문제에 대한 이의가 없으면 담보를 해지해 주라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법무사 사무실에 가서 또 크레임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담보이전 및 해지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던 법무사 사무장이 판결문이 잘못되었다고 이의를 제기합니다. 어이가 없군요.

 

한 참을 논쟁했습니다. 법무사 사무장 이야기는 판결문의 피고란에 주식회사 올아이원이라고 표기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올아이원은 이미 파산하고 종결한 회사이기 때문에 피고가 될 수 없다는 이론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런 이유로 원고가 법원에 특별대리인선임 신청을 해서 법원의 판결로 파산관재인을 특별대리인으로 선임해서 재판을 한 것이라고 설명해도 막무가내 입니다.

 

내가 더욱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는 내가 해 달라는 대로 문서를 작성해 주고 대가만 받으면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사무장도 참 이상하더군요. 자기 주장이 맞다고 하면서 나보고 다시 법원에 가서 물어서 확인하고 오라고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 재판은 합의부에서 판사 3명이 앉아서 한 재판이고 판사가 수차레 보정명령을 하며 6개월이나 걸려서 진행한 재판인대 피고 표기방법이 틀릴 이유가 없다고 해도 사무장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요지부동입니다. 어이 없군요.

 

결국은 사무실에 돌아 와서 법원에 전화로 문의하니 담당법원주사도 자신있게 답변을 못하고 법원집행부나 대법원 등기국에 문의하라고 합니다. 지난번 내가 질의서를 보냈던 대법원 행정처 부동산등기과 오xx 사무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대법원 등기과 사무관도 즉답을 하지 못하고 자기들 내부에서 알아 보고 답변을 주겠다고 합니다. 얼마를 기다려서 받은 답변은 판결문에는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혹시 이상이 있다고 해도 피고 표기변경신청을 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근저당권자가 (주)베비라에서 (주올아이원으로 이전해서 다시 (주)올아이원이 베비라협동조합으로 이전하고 베비라협동조합이 해지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합니다. 결국은 그만큼 인지대와 등기수수료가 더 지출되어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내 생각에도 그런 절차를 거쳐야하는 것은 맞을 것 같습니다. 근저당권자가 (주)베비라인 사건이 뜬금 없이 베비라협동조합으로 등기가 이전된다면 이치에 맞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제도 피고를 표기하는 용어 하나 가지고 하루를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담보해지 절차의 순서는 모든 근저당권을 베비라협동조합으로 이전하고 베비라협동조합에서 근저당권을 해지하는 것 입니다. 근저당권자가 (주)올아이원으로 된 경우는 바로 베비라협동조합으로 이전해서 해지하면 됩니다. 그러나 (주)베비라나 (주)티비케이전자 같은 다른 회사가 근저당권자인 경우는 근저당권을 (주)올아이원이로 이전하고 다시 베비라협동조합으로 이전해서 베비라협동조합이 담보를 해지해 주는 절차로 진행됩니다.

 

따라서 담보이전과 해지를 하려면 이사장인 내가 각 등기소에 가거나 경비를 주어 법무사를 각 등기소로 출장을 보내야 합니다. 법무사에게 의뢰 하려면 너무 많은 경비가 듭니다. 나는 이 대목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이유로 이런 단순한 서류접수하는 일조차 법무사가 아니면 대행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는지 모릅니다. 법적규제인지 대법원내규로 전한규정인지 모르지만 규정이 즈러하다면 규정을 따라야 합니다. 이제 나는 차례로 전국을 순방하면서 담보해지를 진행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도 세상은 바뀌고 있습니다. 전자소송제도의 도입이 원인인지 아니면 불경기가 원인인지 최근 서초동 대법원 인근의 노른자위 사무실들이 "사무실 임대"라는 현수막을 내 거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사실은 법이라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사는 규칙을 정한 단순한 규정입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세상을 사는 방법이 모두 다르고 복잡하다 보니 법률도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법은 언제나 국민들의 삶속에 있어야 합니다. 법은 법률전문가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더 가까이 국민들의 것으로 변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