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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이야기/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주말 고궁산책 (1) 경복궁

by 장복산1 2016. 10. 22.

지난 주말에는 작정하고 아내와 같이 고궁을 산책하기로 했습니다. 아내와 결혼하고 50년 가까이 세상을 살면서 문득 자신의 주변을 돌아 보고 세상을 구경하며 살아 온 시간이 별로 없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내가 전격적으로 제안해서 성사된 주말산책이었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유럽을 여행하고 미국동부지역도 여행한 기억은 있지만 아내와 둘이서 이렇게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구경하기는 처음입니다.    

 

우리 내외는 나름으로 열심히 세상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앞만보고 열심히 달려 온 세월을 돌아 보니 벌써 나이가 70줄에 들었습니다. 아무리 100세시대라고 하지만 우리도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 가는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만큼이나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불평등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이 인간에게 준 변하지 않는 가장 공평하고 평등한 기준은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나중에 염라대왕에게 불려 가서 저희들은 어디서 살다가 왔느냐고 물으면 대한민국 어디서 살다가 왔다고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할 꺼리는 만들어 두어야 하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쩌면 아내는 매일 일어 나면 가게 문열고 장사하다 다시 밤이되면 이층에 올라가서 잠자다 와서 잘 모른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서울 오면 지하철 타는 것도 복잡해서 잘 모르겠다고 택시를 타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정도는 우리도 여유를 가지고 고궁도 산책하고 여행도 해 보자는 생각으로 제안해서 성사된 첯 나들이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장담이 어렵습니다.

 

 

먹고 싸고 나면 별 것 아니지만 그래도 큰 맘 먹고 아내가 가게문을 닫고 서울까지 왔는데 칼국수나 라면으로 배를 체울 수는 없는 일입니다. 마침 막내가 브라디보스톡을 여행하고 돌아 오면서 가지고 온 킹크랩으로 아침은 참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오늘은 조선왕조 제일의 법궁이라는 경복궁을 구경하기로 하고 사무실을 들려 지하철타고 광화문에 오니 벌써 점심시간이군요. 점심은 광화문광장 지하에 있는 바심에서 전갈낙탕으로 배를 체우고 뜸뜸이 내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아내와 같이 경복궁 산책을 시작했습니다.

 

 

 

 

경복궁은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하였고, 1592년 임진 왜란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고종 때인 1867년 중건 되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이 주도해 중건된 경복궁은 500여 동의 건물들이 미로같이 빼곡히 들어선 웅장한 모습 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거의 대부분의 건물들을 철거하였다가 다시 복원 중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왕조시대 왕실의 위용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웅장한 분위기였습니다. 사실은 궁궐이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왕권을 잡은 한 집안의 살림살이를 하는 왕의 살림집이 이렇게 크다는 이야기지요.

 

경복궁의 궁궐 안에는 왕과 관리들의 정무 시설, 왕족들의 생활 공간, 휴식을 위한 후원 공간이 조성되었습니다. 또한 왕비의 중궁, 세자의 동궁, 고종이 만든 건청궁 등 궁궐안에 다시 여러 작은 궁들이 복잡하게 모인 곳이기도 합니다. 왕과 왕비의 침전, 동궁, 건청궁, 태원전 일원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권력자들이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이런 위용이 필요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태국에서는 국왕이 죽자 전국민이 1년을 애도기간으로 정하고 왕의 죽음을 애도한다고 하는 뉴스도 들리더군요.

 

 

 

 

 

이렇게 넓은 대지에 이토록 웅장한 집을 짖고 왕권을 행사하던 조선왕조는 과연 무슨 이유로 어떻게 몰락했을까? 물론 일제의 침략이라는 외부적 요인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왕이라는 절대권력이 무너지는 세밀한 과정들을 상상하니 권력의 속성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흥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권력(權力)이란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 권력을 누가 어떻게 공인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면 권력의 속성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절대권력인 대통령의 주변을 맴돌며 온갖 권모술수와 비리로 물든 권력의 주변 인물들이 권력을 만들고 그 권력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먹을 때 뿐입니다. 먹고 쌀 때는 마찬가지지요. 아무리 달콤한 권력도 사실은 그 때 뿐입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을 마지할 때 인간은 한 없이 초라하고 외롭게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그냥 오늘은 편한 마음으로 아내와 같이 고궁산책이나 즐겨야 하겠습니다. 오래만에 많이 걷다 보니 허리가 좀 아프기는 하지만 그래도 참 좋습니다. 

 

 

 

 

 

 

가을비를 촉촉히 맞으며 단풍나무가 곱게 물드는 것을 보니 어느세 가을이 익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한 계절이 가고 나면 나도 또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되겠지요. 그렇게 우리는 늙어 가고 있습니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의 "이 세상 소풍이 끝 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 말하리라..." 참 의미있게 들립니다.

 

"귀 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아내와 같이 경복궁 고궁산책을 마치고 나오니 광화문광에서는 2016서울아리랑페스티벌이 한참입니다.

 

다음 달에는 창경궁을 산책할지 덕수궁을 산책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내가 처음에는 안 가겠다고 하더니 이렇게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면 안 가겠다고 하던 말이 아마 내숭을 떨었던 모양입니다.

 

나이가 드니 자식들은 모두 자기할 일들이 바빠지고 우리 둘이 핸드폰 카메라에 셀프타이머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셀카촬영을 한다고 한 사람은 핸드폰을 들고 한 사람은 셔터를 누르며 애쓰던 모습이 좋은 추억으로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