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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이야기/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터키일주여행(제6일차)

by 장복산1 2017. 3. 22.

아이발릭에서 트로이까지는 3시간정도 달려야합니다. 에게해를 끼고 북상하다가 제법 높은 산길을 한 참 오르더니 다시 평지같은 길을 한 없이 달리고 있습니다. 차창 밖에는 산이고 들이고 온통 올리브나무 농장들이 천지로 널려있습니다. 달리는 버스에서 현지 가이드가 트로이전쟁에 대한 설명을 하더군요. 나는 솔직히 트로이목마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은 있으나 트로이전쟁에 대한 깊은 내막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하니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해를 끼치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컴퓨터 바이러스와 비슷한 위험인자를 지니고 있는 트로이목마라는 컴퓨터 바이러스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도 기억나는군요.

 

트로이전쟁은 그리스와 아나톨리아 트로이사람들 사이에 일어난 전설적인 전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전쟁이 시작된 동기가 더 전설적인 이야기 같았습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트로이 전쟁의 발단은 트로이 왕의 아들인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데리고 달아나자 메넬라오스의 형인 아가엠논이 트로이를 치기위해 그리스 원정대를 이끌고 트로이를 공격하여 시작한 10년 전쟁이라고 합니다. 트로이군이 10년을 방어할 수 있었던 것은 트로이의 지형적 위치가 바다와 성곽사이에 일정한 평야가 있고 높은 성곽을 뒤로 넓은 평야가 위치해서 농사일을 하며 전쟁할 수 있는 특수한 지형적 조건이 10년 전쟁을 버틸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친 그리스군이 결국은 전략적으로 불시에 트로이를 습격할 목적으로 일정한 군대를 커다란 목마에 숨기고 철수를 위장하는 방법을 써서 트로이 사람들이 그 목마를 도시안으로 들여 놓자 목마안에 숨어있던 그리스 군인들이 몰래 나와서 성문을 열어 주었고 그리스군대가 쉽게 성안으로 입성해서 트로이를 점령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전혀 해를 끼치지 않을 것 같은 컴퓨터바이러스를 트로이목마 바이러스라고 하는 모양이군요. 그리고 대체적으로 걷과 속이 다른 속임수도 트로이목마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트로이는 단순한 전쟁터의 흔적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차낙칼레에서 30여분 거리에 있는 트로이 유적지는 전설 속의 도시로만 알려져 있다가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이 그 실체를 발견하면서 사실로 증명되었다는 것도 전설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슐리만은 어렸을 때 들었던 일리아드가 전설이 아닌 사실이라고 믿고 트로이를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다가 1873년 이곳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는 발굴 작업을 통해 발견한 금은보화 등의 유물들을 독일로 밀반출하여 베를린 박물관에 공개하였고, 이로써 트로이는 전설이 아닌 실존 도시임이 널리 알려졌고, 1996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게 됩니다.

 

 

 

 

더욱 대단한 사실은 트로이유적은 시대별로 9층까지 유적이 혼재해 있으며 최하층은 무려 기원전 4000년대의 유적으로 밝혀졌답니다. 이 외에도 2층에서는 메가론식의 왕국으로 짐작되는 건물과 많은 금은보화가 발견되었고, 7층에는 호메로스 시대와 청기 시대 초기, 8층에는 아르카이크 시대, 맨 위의 9층에는 헬레니즘 시대 및 로마 시대의 유적이 있어 트로이 유적지의 발굴 작업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트로이유적을 발굴한 슐리만에 대한 이야기도 무척 흥미가 있었습니다.

 

슐리만은 많은 돈을 벌어서 7세 때 아버지가 준 역사책 속에서 불타고 있는 트로이 그림을 보고 전설같은 트로이유적을 발굴하게 됩니다. 그는 그리스의 소녀 소피아 엥가스트로메노스와 재혼해서 트로이유적을 발굴하다 어느 시점에 금은보화가 나오기 시작하자 "오늘은 슐리만의 생일"이라고 속이고 인부들을 모두 쉬게한 다음 금은보화 등의 유물들을 독일로 밀반출해서 베를린 박물관으로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지금도 발굴작업이 한 참인 트로이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참 많이 배웠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트로이 목마라는 단어만 들어서 알고 있던 것과 실제 현장을 보면서 가이드설명을 듣고 여행에서 돌아와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면서 여러 자료들을 찾는 과정에 나는 전혀다른 트로이목마와 새로운 역사에 대한 느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새로움에 도전하며 미지에 대한 동경으로 출발하는 여행은 이래서 나에게 항상 풍부한 삶의 자양분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행이 주는 즐거움은 항상 여러가지 방법으로 나를 성숙하게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다양한 삶의 영역에 있는 사실들을 모두 체험하고 살지는 못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역량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다람쥐 체바퀴돌듯 주위만 맴돌다 세상을 떠나기도 합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보통은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라고 치부하고 넓은 세상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경험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너무도 많습니다. 나도 이번에 터키를 여행하기 전 까지는 터키가 이렇게 넓고 유구한 문화와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나라인지 몰랐습니다. 구글지도에서 조회만 하면 언제라도 볼 수 있는 터키지도도 이번에 처음 조회해서 보았습니다.

 

 

아이빌락을 출발해서 트로이 유적지를 관광하고 차나칼레로 이동해서 Ferry를 타고 마르마라해와 에게해를 연결하는 다르다넬레스해협(Dardanelles)을 건너 겔리폴루반도로 가면서 느끼는 쾌감은 미처 상상하지 못하던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아시아대륙과 유럽대륙을 연결하는 최 단거리 코스의 카페리를 타고 도착한 겔리폴루항구는 분주하게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이 활기를 느끼기에 충분한 항구였습니다.  

 

 

 

 

 

항구 길목에서 조현아 땅콩회항으로 더 유명한 마카다미아 땅콩을 파는 아저씨가 인심좋게 집어주는 땅콩 한 줌을 받아들고 들어간 식당에서 내주는 고등어 케밥도 일미였습니다. 조금 전만 해도 우리는 아시아 대륙에 있는 트로이 유적지를 관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새 유럽대륙에 와서 구운 고등어를 겯들인 점심밥을 먹고 있다는 사실도 매우 흥미롭고 여행의 즐거움을 더하는 것 같았습니다.     

 

 

 

부산하면서도 여유로워 보이는 항구의 정겨운 모습을 얼마 즐기지도 못하고 우리 일행은 다시 버스를 타고 이스탄불까지 6시간을 달려야 합니다. 다르다넬레스해협을 오른쪽으로 끼고 긴 겔리폴루반도를 따라 한 참을 올라 가서 다시 이스탄불까지 가는 길은 제법 먼 거리지만 차창밖으로 비치는 이국의 풍경들이 지루한 우리의 여정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도심의 교통체증이 시작되는 것으로 보아 이스탄불이 가까워지는 모양입니다. 동양과 서양이 함께하는 공존의도시 이스탄불은 오스만제국의 향기를 잔뜩 품고 우리를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스탄불 야간투어일정이 취소되면서 아쉬움은 있지만 내일은 인류문명이 살아있는 거대한 박물관이라는 이스탄불을 관광할 것이라는 부푼꿈을 안고 이미 밤은 어둠속에 또 다른 풍경들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창밖으로 가로등불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는 시간에 한식이라며 내는 닭곰탕으로 저녁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식당과 같이 운영하는 아래층 쇼핑센터에서 터키의 마지막쇼핑이라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모두가 쇼핑을 즐깁니다. 올리브유로 가공한 제품들과 수공예작품이라는 예쁜접시들이 눈에 들어 옵니다. 올리브유로 만드는 제품들도 화장품부터 여러가지로 참 다양한 종류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