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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이야기/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이순신 타워를 세운다는 대발령을 다녀 왔습니다.

by 장복산1 2019. 8. 18.

진해사람과 창원사람은 어떻게 구분할까?

나는 1965년 추운 겨울에 9인승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먼지가 펄펄 나는 비포장도로인 마진고개를 넘어 진해에 도착해서 해군에 입대한 이후로 54년을 진해에서 살았습니다. 아들은 진해고등학교를 나오고 딸은 진해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우리 아이들은 진해사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내가 진해사람인지 충청도 사람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충청도에 가면 내가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고 하고 진해에 오면 나보고 충청도 사투리를 쓴다고 합니다. 내가 용기가 없어서 진해를 떠나지 못하는지 진해가 좋아서 진해를 떠나지 못하는지 그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마치 내가 진해사람 행세를 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제도 아들 딸 며느리 손녀가 부모 집에서 밥 한 끼를 같이 먹겠다고 5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와서 하루 밤 자고 휭 하니 떠나고 나니 집안은 적막강산입니다. 내가 진해 살면 진해사람이고 서울 살면 서울사람인 것 같이 진해사람과 창원사람을 구분할 특별한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도 나는 진해, 마산, 창원이 통합한다고 할 때 통합을 반대하는 운동의 중심에 서서 지자체통합을 극구 반대했던 일이 있습니다. 지금도 창원이나 마산에 무엇을 하는 것 보다는 진해에 무엇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나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진해에 이순신 타워를 건립한다는 문제가 의견이 갈리면서 마음이 별로 편치 안습니다.


웅천 대발령을 다녀왔습니다.

어떤 일에 의견이 서로 갈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각기 다른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각기 다른 판단을 기준으로 세상을 살기 때문이라는 사실 정도는 나도 익혀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도 가끔은 자기주장을 강하게 펴면서 고집을 부리기도 합니다.


세상이 바뀌면서 요즘은 직접 만나서 서로 대면해서 소통을 하기 보다는 편리하다는 이유로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일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최근에는 단순한 메시지 수준을 넘어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같은 SNS 기능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버리고 말았지요.


서로 얼굴을 대면할 일도 없이 친구가 되기도 하고 토론하며 언쟁을 높이게 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세상이 민주화 되다보니 이제는 대통령도 대 놓고 비판하며 비판의 수준을 넘어 욕까지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기본 예의나 상식도 없습니다.


이번에도 허성무 창원시장이 진해를 배려하는 차원인지 아니면 진해가 적지라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진해 대발령에 이순신 타워를 건립하는 문제에 대한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워낙 강하고 의견을 표현하는 방법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제는 대발령을 직접 다녀왔습니다. 마치 자기들 생각이 전부인양 상대를 몰아치며, 시민들이 선출한 창원시장을 인격적으로 폄하하는 발언까지 서슴치 않는 다는 문제에 동의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나는 특별한 생각 없이 대발령에 이순신 타워를 세웠으면 좋겠다는 글을 내 블로그에 썼다가 졸지에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생각입니다.






대발령(大發嶺)’이라는 지명은 “서쪽에 있는 큰 고개”라 하여 ‘대발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중종 실록』에는 삼포 왜란 때, 관군이 왜구 평정을 하려고 서쪽으로 ‘대팔현(大八峴)’으로 쳐들어갔다 하여 ‘大八峴’이라 차자 표기하였고, 비변사 『웅천현 지도』에는 ‘대현(大峴)’으로 차자 표기되고, 1895년(고종 32)의 『웅천현 지도』에는 ‘대치(大峙)’ 등으로 표기되고, ‘대발령[대방령]’이란 표기도 볼 수 있다. 이러한 표기는 모두 ‘발티’ 또는 ‘큰 발티’의 차자 표기인 것이다. ‘큰티’란 ‘큰 고개’를 뜻하는 말이며, ‘발’은 서쪽을 나타내는 말로서 ‘서쪽에 있는 큰 고개’로 해석하면 알맞을 것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나는 웅천이나 부산을 오가며 수 백 번도 더 지나쳤을 대발령을 54년 만에 처음으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대발령 제1쉼터에는 제법 넓은 공간이 있습니다. 진해와 부산을 오가던 구, 도로를 직선화하면서 예전에 다니던 길도 그대로 보전되어 있더군요. 그리고 대발령 정상에는 진해 상수도 가압장이 있던 터라 정상까지 차량이 올라갈 수 있는 임도 같은 길이 있어서 편하게 올라 갔습니다. 대발령을 오르는 길 옆으로 스치며 보이는 진해시가지 모습들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정상에는 상수도 가압장이 있던 제법 넓고 평평한 터가 자리 잡고 있더군요. 가로40m 세로 100m터는 족히 될 만한 면적이었습니다.






대발령 정상에서 바라 보는 풍경들

대발령 정상에서 보는 풍경들도 나는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삼포 왜란 때, 관군이 왜구 평정을 하려고 서쪽 ‘대팔현(大八峴)’으로 쳐들어갔다, 는 대발령에 대한 이야기에서 유래하는 지명이 주는 의미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웅천읍성, 제포진성, 제포왜관, 제덕토성, 웅천왜성, 명동왜성, 안골포진성, 신문진 등과 진해 신항을 조선시대 국난 극복의 상징인 이순신장군이 발 아래로 내려다 보고 있는 위치에 이순신장군 타워를 세운다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가까이는 남해바다의 크고 작은 섬들이 보이고 거가대교도 시야에 들어옵니다. 이순신 타워를 100m 높이로 세우면 대마도도 보일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뒤로는 진해 시가지가 내려다보입니다. 북서쪽으로 해군사관학교도 보이고 왼쪽에는 이순신 리더쉽 센터도 보이는 군요. 이정도 공간이면 이순신장군 타워를 세우고 앞에서 추모제도 올리고 해군 군악연주나 의장대 시범 같은 행사도 충분히 소화할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어쩌면 이와 같은 문제는 창원시 보다는 해군에서 더 발 벗고 나서서 추진하고 운영에도 참여해야할 문제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간 진해 주민들은 진해가 군사도시라는 이유로 일정부분 혜택을 받은 부분도 있지만 피해가 더 컸다고 생각합니다. 인근 마산이나 창원은 고층빌딩들을 올릴 때 진해는 고도제한에 묶여서 제산 권 행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진해 중심가에는 해군교육사령부와 k-10 비행장이 시가지와 바다를 갈라놓고 있습니다.  




이순신장군 타워는 관광자원이 될까?

이순신장군 타워를 파리의 에팰탑이나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의 거대한 석상인 예수상과 같은 관광자원과 비교하면서 미리 안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반대하시는 분들은 그렇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순신타워는 토건사업이고 예산낭비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비판만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허성무 시장이 이순신타워 건립을 선거공약으로 제시해서 시민들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불가론을 주장하시는 분도 그렇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이건 처음부터 완벽하게 일을 계획하고 계획대로 추진해서 성공할 것이라는 확고한 보장도 절대 없습니다 단지 확률이 조금 높기는 하겠지요.


나는 대발령 이순신타워가 에팰탑정도는 아니라도 원주 출렁다리나 통영 케이불카 정도만 관광객을 불러들일 수 있다면 만족할 것 같습니다. 예산문제도 대발령은 정상에 이미 공터가 있고 정상을 오르는 길도 있어 어느 정도 절약이 됩니다. 그리고 제1쉼터에 그리 크지 안은 주차공간도 있습니다. 허성무 시장이 선거공약으로 제시해서 시민들 승인을 받지 못했지만 시민을 대표하는 시의회의 승인절차를 거치면 됩니다. 대발령에 이순신타워를 건립하면 진해 군항제와 연계하여 명동 마리나 해양공원, 진해 해양스포츠센터, 쏠라타워와도 관광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드림로드나 시루봉길을 등산하는 등산객들이 들릴 수 있는 사철관광개발도 전혀 배제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토리텔링, 콘텐츠도 같이 고민하고 노력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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